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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한겨레]인문학 향기 따라 함께 걷는 옛길 /이병학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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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한겨레]인문학 향기 따라 함께 걷는 옛길 /이병학

인문학 향기 따라 함께 걷는 옛길


11월9일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영남대로 탐방행사 참가자들이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낙동강변길을 걷고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인문학 테마여행 인기
영남대로·삼남대로 등 옛길 탐방하며 관련 역사·문화에 대해 전문가·지역민들과 소통하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참가기

“평소 옛길과 지명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도서관 수필반 모임인데요. 소잿거리 얻을 겸 해서 모임 전부가 참가하게 됐어요.” “우리 동네로 영남대로가 지난다는데, 어디인지 좀더 알고 싶어서 왔죠.”

 

지난 11월7일 낮, 경북 청도군 청도도서관 앞으로 4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남녀 17명이 모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행사 참가자들이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은 옛길과 인문학 그리고 도서관을 연결고리로 삼아, 각 지역의 옛길을 탐방하며 길에 스민 선인들 삶의 애환과 역사·문화를 전문가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되새겨보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인문학 소통’ 행사다. ‘도서관에서 길을 묻고 길에서 인문을 만나다’를 기치로 내건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일상을 통해 다가가는 인문 학습형 길 여행 프로그램이다. 행사 진행팀(본진)은 지난 10월 삼남대로 구간을 탐방한 데 이어, 11월4일부터 9일까지는 영남대로 구간을 따라 이동하며 각 지역 주민들과 함께 선인들의 발자취를 살폈다.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이어진 영남대로 탐방 막바지 여정(7~9일)에 참여해, 경북 청도, 경남 밀양·양산 지역의 옛길 흔적과 문화유산들을 둘러봤다.

 

경남 밀양과 양산 사이 낙동강변 벼랑의 옛 영남대로 ‘작원잔도’ 흔적.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걷고 쉬고 둘러보며 길 위에서 배우는 인문학

 

영남대로 옛길 탐방은, 주로 버스로 이동해 옛길 언저리의 문화유산들을 살펴보며, 남아 있는 옛길 일부 구간을 따라 걷고, 옛길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부분의 옛길이 도로나 철도 부지로 바뀐데다, 도시 개발로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진행팀 본진은 옛길 걷기 전문가, 여행전문 작가, 술 전문가, 다산 정약용 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꾸려졌다. 심지어 병학(전통 병법·무예 등을 다루는 학문) 전문가도 있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풍부한 해설을 곁들여 탐방을 실속 있게 이끌었다. 술 전문가는 이동 중에 면 단위마다 있다가 사라져간 술도가(양조장)와 전통술에 대해 설명했고, 한문에 밝은 사학자는 빗돌에 갑자·을축 등 간지(干支)로 새겨진 건립 시기 등을 재빨리 계산해 ‘서기 몇년’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영남대로는 백성들의 애환이 서린 삶의 길이자 선비들의 과거길, 관리들의 부임·이임길이면서, 임진왜란 당시 왜군 침입로이고, 또 일본을 오간 조선통신사의 이동로였습니다.”

 

이번 행사를 꾸린 김태희 사업본부장의 설명을 들으며, 먼저 찾아간 곳은, 청도 북쪽 옛 영남대로가 지나던 팔조령 너머 녹동서원(한일우호관·대구시 달성군 지역). 임진왜란 때 왜군 출신 장군으로 큰 공을 세운 김충선 장군을 기리는 서원이다. 김충선(일본명 사야카)은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으로 조선에 출병해 투항한 왜군 장수다. 조총·칼 등 임진왜란 때 무기들을 전시한 전시관에서 한국병학연구소 김영호 소장이 ‘삼지창’이란 제목을 달고 전시된 납작한 쇠붙이 앞에서 말했다. “설명이 잘못됐군요. 이건 무기로 쓴 삼지창이 아니라 무당들이 쓰던 무구의 하나지요.”

 

밀양 추화산 자락에 남아 있는 영남대로 옛길 구간. 탐방객들이 일제강점기 통신선로 매설 표석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김충선 묘를 보고 내려와 버스로 이동해, 녹명리의 죽바위를 찾았다. 이 바위를 밑에서 보면 높이 20m를 넘는 거대한 배 모습이지만, 올라가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쯤 되는 널찍한 경사진 바위다. 실제로 옛날엔 초등학생 소풍 장소로 자주 이용됐다고 한다. 주변에 대나무가 많아 죽바위로 불린다는 설도 있지만, 도서관 수필가 모임에서 참가한 지역 주민 박순조(70)씨는 “옛날 어른들한테서, ‘이 바위가 의병들에게 주민들이 죽을 쑤어 먹인 곳이어서 죽바위’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바위 끄트머리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오른,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서 청청한 솔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버스 타고 이동하며 
옛길 주변 문화유산 탐방 
도서관에서 지역 주민 만나 
길에 얽힌 이야기 나누며 
함께 옛길 걷는 여정

 

일행은 청도읍내로 들어와 청도 객사(도주관)와 동헌, 청도향교와 석빙고, 청도읍성을 둘러보고 하루 일정을 마쳤다.

 

밀양에서의 첫 일정은, 밀양시립도서관에서 진행된 ‘임진왜란 및 조선통신사와 영남대로’ 주제의 ‘토크쇼’였다. 정출헌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정경주 경성대 한문학과 교수, 정석태 부산대 점필재연구소 연구교수, 한태문 부산대 국문학과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서, 영남대로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 침입로와 대일 조선통신사 이동로로 이용된 배경과 의미 등을 설명했다. “왜군이 당시 조선의 길 사정에 밝은 대마도 도주를 안내자로 활용해 한양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로 이동했다”거나 “일행이 400~500에 이르는 조선통신사 일행의 이동로는, 접대해야 할 지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하행(한양~동래)·상행(동해~한양) 노선을 달리했다”는 등의 설명에 참가자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부에선 의견이 갈렸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좋았을 텐데.”(60대 남성) “너무 깊어요. 어려웠어요.”(50대 여성) 진행팀은 “전문가 영역으로 너무 깊게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내용이 평이하면서도 알찼다”며 “옛길과 도서관, 길에 얽힌 역사·문화가 제대로 어우러진 현장이었다”고 평가했다.

 

11월8일 오전 밀양시립도서관에서 열린 ‘임진왜란·조선통신사와 영남대로’ 토크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개발 와중에 살아남은 희미한 옛사람의 그림자

 

오후부터 진행된 밀양 영남대로 탐방엔 38명의 시민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이때 일부 구간이나마 옛 모습으로 남아 있는 옛길을 걸어볼 수 있었다. 밀양에선 문화유산 해설사가 나와 옛길 구간을 안내했다. 추화산 밑 밀양대공원의 충혼탑을 보고 제사고개 밑에서부터 구덕골까지 산자락에 영남대로 옛길이 남아 있었다. 충혼탑이 들어선 자리는 ‘북정원’이란 옛 건물터가 발굴된 곳이다. 북정원은 영남대로상에 있던 여관으로, 한양에서 밀양으로 내려오는 관리 등을 맞이하던 장소로 추정된다고 한다.

 

단풍잎 날리는 울창한 숲길을 걸어 내려가니 비로소 옛사람들 오가던 길에 들어선 느낌이다. 마을로 내려서자 커다란 모과나무 한 그루가 발치에 수십개의 주먹만한 모과들을 내려놓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잎을 바람에 흩뿌리고 서 있다. 이 나무에 소원을 빌고 떠나야 과거에 급제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일부러 길을 벗어나 소원을 빈 뒤 샛길을 통해 영남대로로 올라섰다고 한다.

 

아북산(밀양 관아 북쪽의 산) 밑에서 밀양읍성 성곽을 따라 아동산을 거쳐 ‘영남 제일루’로 불리는 영남루(보물)에 이르렀다. 영남루라는 말 자체가 고개(문경새재) 남쪽의 누각이란 뜻이다. 누 자체도 웅장하지만, 딸린 건물과 연결되는 층계와 복도 건물(층층각)이 어우러진 모습이 눈부시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의 하나다.

 

이튿날엔 영남대로상에 남은 뚜렷한 옛길 흔적 일부를 만날 수 있었다. 삼랑진 작원관지에서 양산 원동마을로 낙동강변을 따라 조성한 자전거도로를 걸으면서 만난 작원잔도 흔적이다. ‘잔도’는 바위절벽 등을 파고 다듬어 낸 옛길로, 영남대로상의 문경 관갑천잔도, 물금의 황산잔도, 밀양의 작원잔도 등이 이름 높다.

 

작원관은 김해·양산 쪽에서 밀양으로 드는 관문이자 역원 구실을 하던 곳인데, 임진왜란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본디 1㎞쯤 떨어진 노적봉 밑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철도 부설로 옮긴 뒤 대홍수에 쓸려갔다고 한다. 어설프게 복원해 놓은 작원관 건물보다 비각 속에 든 빗돌들이 눈길을 끈다. 작원대교비와 작원진석교비, 작원관원문기지 등이다. 앞의 두 빗돌은 다리를 놓은 배경을 설명한 비인데, 왼쪽 붉은빛 도는 작원진석교비엔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자주 썩고 물에 휩쓸려 돌로 다리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최근 4대강 사업 때 발굴됐다가 훼손 우려가 있어 다시 묻어둔 낙동강변의 일명 ‘처자교’를 만들고 세운 빗돌로 추정된다고 한다.

 

자전거길을 따라 원동 쪽으로 20여분 걸으면 왼쪽 벼랑에서 작원잔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절벽을 다듬어 판석을 겹겹이 깔고 그것을 기둥돌로 받쳐놓은 옛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 감동을 준다. 해설사 김재학씨는 “이 지점을 제외한 옛 영남대로는 대부분 철길 노반이 됐거나, 도로가 나 사라졌다”고 말했다.

 

일행은 양산에서 부산 동래로 이동해, 부산대 정출헌 교수의 안내로 동래읍성 등을 둘러본 뒤 일정을 마치는 동시에, 삼남대로·영남대로 탐방 행사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청도 밀양 양산/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