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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립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탐방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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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선생님 18-11-12 19:18 조회42회 2018.11.12
원주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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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문화의 뿌리와 강원도



원주시립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강의를 듣던 중

강원 문화의 뿌리를 찾아 내 고향 진천을 탐방한다는 홍 인희 교수님의 말씀에 이게 꿈인가 하고 너무 기뻤다.

다른 일정 모두 물리치고 설레는 맘으로 10월 27일 진천 탐방길에 올랐다.

첫 번째 코스는 대한독립의  염원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이상설 생가 방문을 하였다.

 

*숭렬사 위치 _ 진천읍 산척리 산 134-2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로 가옥은 앞면 3칸과 옆면 1칸 규모로 잡석의 기단 위에 흙벽돌로 벽을 쌓고 진흙으로 마감한 초가를 볼 수 있었다. 이 상설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숭렬사와 숭모비도 있었는데

세계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1870~1917)은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나고 담론에 능하여 1904년(광무 8) 문과에 급제, 다음해에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이 되었다. 그러나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통분을 금치 못해 울면서 대중에게 연설한 후 두문불출하다가 1906년(광무 10) 볼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고, 다음해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되자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평화회의장을 방문했다. 을사 5조약은 왜적의 강압적 협박에 의한 것이지 한국 황제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님을 호소하려 했으나 외교권이 없는 나라의 대표라는 이유로 회의에 참석할 자격조차 얻지 못하자 낙심하여 유랑길에 올랐다. 미국과 시베리아를 거쳐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와 1910년 국권침탈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세계 여러 나라에 보내고, 1914년 중국과 러시아에 있는 독립군 동지를 모아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우는 등 평생을 독립 운동에 헌신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을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천년  세월  간직한  아름다운  돌다리 농다리를 찾았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장(最長)의 아름다운 조형미가 돋보이는 돌다리 농다리(농교 / 籠橋)는 고려시대 때 축조되었다고 전해지며 교각의 모양과 축조 방법이 가장 큰 특징인데 석회 따위로 속을 채우지 않고 돌의 뿌리가 서로 물려지도록 돌만으로 쌓았다고 한다. 교각의 폭은 대체로 4m 내지 6m 범위로 일정한 모양을 갖추고 있고, 폭과 두께가 상단으로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 물의 영향을 덜 받게 하기 위한 배려임을 알 수 있었다. 작은 낙석으로 다리를 쌓았음에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상판석의 돌은 아름다운 무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축조 기술은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으며 동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긴 다리에 속한다고 하며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부친상을 당해 친정으로 가는 여인을 위해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멀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리 모양이 지네를 닮았는데 100m의 천년 묵은 자줏빛 지네가 다리로 변했다고 한다.

  농다리 들어가는 바로 인근 구산동 마을의 명물 중 하나인 세종대왕의  갈증을  달랜  샘물 어수천(소습천)도 있다.

산비탈 들머리의 평평한 품(品)자형 반석인 세습바위 사이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농다리 전시관에서 농다리로 가는 길 약 10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어수천(御水泉) 또는 소습천으로도 불리는데 어수천은 세종 대왕이 안질을 치료하고자 초정약수로 가는 도중에 이 샘물을 마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농다리를 건너 이어지는 초평저수지 수변데크 초롱길을 일행과 함께 걸었다.

진천군의 대표 둘레길로 진천 농다리로부터 초평호를 따라 친환경 나무데크길 1km와 트레킹길 1.7km를 조성하여 누구나 쉽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금빛 물결 출렁이는 초평호를 바라보며, 생거진천의 맑은 바람을 마주하며 걷는 기분은 휴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충북에서 가장 큰 초평호는 바다 없는 충북에서 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으며, 굴곡이 심한  ㄹ’자 형태의 호수를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초평호 안에는 수초와 크고 작은 섬들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고 잉어·가물치·붕어·뱀장어 등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전국에서 유명한 낚시터로 각광받고 있다. 이 곳을 찾는 낚시꾼들을 위한 수상 방갈로가 떠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겨울에는 얼음낚시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여름이면 래프팅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환호성이 축포처럼 터진다고 한다.

또한 초평호에서 한반도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곳. 두타산 형제봉에서 내려다본 초평호와 그 인근 형상이 한반도 모양을 꼭 닮아 신비함을 전하고 있다. 전국에 한반도 지형을 닮은 관광지가 많지만 가장 닮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용이 한반도를 끼고 승천하는 모습으로도 보여 성공의 기운을 얻는 땅이라고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세 번째 방문지는

송강사로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찾았다. 문백면 송강로 523 에 위치해 있으며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에 있던 묘를 현종 6년(1665)에 송시열이 이 곳으로 옮겨 오면서 사당을 지었다. 정송강사는 전형적인 사우의 건축 방식을 따라 홍살문을 거쳐 외삼문, 내삼문, 사당이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홍살문 앞 동남쪽에는 신도비가 있고, 박공지붕(맞배지붕)형의 외삼문인 문청문(文淸門) 앞 서쪽으로  송강정철선생시비’가 있다. 또한 외삼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송강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정송강사 입구에 있는 보호수인 느티나무의 위세도 당당하다.

송강정철(1536~159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가사문학의 대가이다. 국문학사에서 윤선도, 박인로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그가 남긴 사미인곡·속미인곡· 관동별곡·성산별곡 및 시조 100여 수는 국문시가의 질적·양적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가사작품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몸이 태어날 때 님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연분임을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 오로지 젊어있고 님도 오로지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견줄 곳이 전혀 없구나

- 사미인곡 중에서-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402m의 산으로 기쁨을 주는 산이라는 뜻을 지닌 환희산 아래 봉죽리 어은마을에 정송강사가 있고 산 중턱에 정철의 묘소가 있다. 정송강사에서 정상까지 2.4km의 거리로 경사가 완만하여 30여분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어 피로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등산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오래전 교향을 떠나 원주에서 살아온 나는 운 좋게도 홍인희 교수님의 인문학 강의을 듣게 되고, 그립던 고향을 찾아 문화유적을 답사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교수님의 해박한 시대배경 설명에 감사드리며, 고향 진천에 대해 자긍심을 심어주신데 대해 홍 교수님과 수고하신 원주시립도서관 김해영님께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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