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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립서강도서관] 미술관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 2차 후기 (기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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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15-07-18 13:09 조회568회 201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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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립서강도서관] 미술관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 2차 후기 (기선계)

모딜리아니 전을 보고 ? 서정적이고 우아한 여인들의 향연

(서강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2차 탐방) 20150711

 

단순하고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전시를 보고 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리고?

......

전시를 보고나서 잡히지 않는 느낌 때문에 고민하였다. 눈동자가 없는 눈에서 느껴지는 영혼의 울림? 그러기엔 그림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내가 그림에 쏙 빠지지도, 그림이 나에게 다가오지도 않는 무엇.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무엇에 대해 생각했다.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도리스 크리스토프가 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책을 뒤적였다. 지난 번 밀레전 후기를 써서 서강도서관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나의 느낌을 후련하게 설명해주는 문구를. 가려운 등을 누군가 박박 긁어주는 쾌감이 일었다.

 

'모딜리아니는 감성에 호소하는 작품을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의 개입을 매우 혐오하였다. 도대체 화가에게 분위기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는 내용을 배제했으며, 그의 그림은 객관적인 것으로 변했다. 데생은 대상의 윤곽을 그리는데 집중되었고, 신경질적인 손동작을 통해 거의 무의적으로 진행되었다.'

1909년 모딜리아니를 처음 만난 화가 쿠르트 스퇴르머가 그에 대해 평한 글이었다. 모딜리아니의 후기 작품은 실제 이 같은 보편성, 혹은 익명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객관성을 지향하며 서술성을 극도로 배제하고 대상을 양식화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통해 완성되었다.

 

왜 이런 식의 작품을 지향했을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미술의 보고였고, 르네상스 미술의 탄생지였다. 이러한 토양에서 자라고 배운 모딜리아니는 고전적인 조화와 아름다움에 경도되었다. 나름의 아름다운 비율과 곡선을 창조하고 그 양식에 맞춰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것을 구현할 가장 적합한 대상이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대상은 사람의 얼굴과 인체에 집중되었다. 인물의 조각에 한동안 몰두했던 것도 이러한 경향 때문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두 개의 누드화가 있었다. 그 중 '머리를 푼 채 누워있는 여인의 누드' (1917년 작)에 한참 머물렀다. 밝은 주황색으로 살색을 표현하고, 초록색과 빨강색을 배경으로 사용하였다.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까만 머리를 가지런히 어깨에 드리운 여인의 까만 눈동자가 캔버스 밖의 사람들을 고요하게 바라보았다. 알몸인데도 관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서정적이고 우아한 자태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가족들이 휴식하고 손님들을 응대하는 거실에 걸어놓아도 아무렇지 않을 듯 했다. 아름다운 정물화처럼. 이런 느낌은 그가 잔느 에뷔테른느를 주로 그린 후기 작품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무표정한 표정과 눈동자 없는 눈을 보고 감정의 끓어오름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 고요함, 색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흐나 뭉크나 칼로로부터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감정의 폭풍우를 겪었다면, 모딜리아니의 그림으로부터 세상을 관조하는 평화로움을 경험하였다.

 

말년에 모딜리아니는 1차 세계대전을 피해 프랑스 남부로 이사했다. 그 때 인상주의의 거장인 르누아르와 만나게 되었다. 그들의 만남에 대한 일화는 그들의 예술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르누아르는 현실 속에서 얻어지는 그림, 다시 말해서 감상적이고 촉각적인 회화를 선호했다. 반면 모딜리아니는 그런 그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모딜리아니에게 그림이란 르누아르가 생각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모딜리아니의 관능은 보다 정신적이고 서정적이며 동시에 차가운 것이었다. 두 거장의 만남은 실패로 끝났다.

 

모딜리아니는 20세기 초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파리 예술계는 후기 인상주의 시대가 가고 큐비즘의 시대가 태동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모딜리아니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 세계를 창조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살던 그는 영원한 것을 남기고 싶다는 예술적 포부와 살아있을 때 모든 것을 다 누리리라는 방탕한 삶으로 점철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였고, 인생 후반부에 만난 잔느 에뷔테르느와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36살의 삶은 너무 짧았다.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좀 더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색감의 세계가 펼쳐졌을 것이다. 그의 후반기 작품을 보며 든 생각이다. 많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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