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도서관] "대전의 역사와 선비문화"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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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주 15-07-12 06:38 조회691회 2015.07.12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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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역사와 선비문화 답사기
한밭도서관에 다니다가 로비에 비치된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를 보고 친구와 함께 참가신청 을 하게 됐다.
인문학 공부라서 어렵고 재미도 없을 줄 알았는데, 첫날 사학자이신 한기범 교수님의 해박하신 역사강의에, 약속된 2시간은 금방 지나 갔다.
“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란 책을 미리 읽고 메모도 해 가지고 같더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머리에 쏙쏙 들어 왔다.
대전이 뿌리 깊은 역사와 출중한 문화전통을 가지고 있는 역사의 고장이고, 넉넉한 유교자산을 가진 선비의 고장이란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15세기 사육신 의거의 주역 박팽년, 17세기 북벌운동 및 예송의 송시열, 송준길, 권시, 한말과 국권 상실기의 송명선, 신채호 등에 이르기까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대전 출신이라는데 금새 자부심이 생겼다.
특히 대전에서 자란 우암 송시열은, 17세기 조선의 큰 인물로 진솔한 삶과 다양한 활동을 한 선비
로서, 학자로서 송자에 이르렀고 학덕으로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한시대 산림의 종장이었고, 한
나라의 국가 대의를 선도한 인물이라고 했다.
다음날 10시 현지 답사를 위해 한밭도서관에서 준비한 관광버스에 오르니, 간식으로 먹을 빵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셨고, 다시 한기범 교수님의 역사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대덕구 읍내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공립학교 회덕향교에 도착했다.
가랑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가운데도 불구하고, 인자하신 전교님이 전통 복식을 하시고 반갑게 맞아 주신다. 우측통행, 공수법등 향교 예법을 말씀해 주실 때, 비로서 참가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조선초기 부사정을 지낸 쌍청당 송유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회덕에 내려와 집을 짓고 살았다는 쌍청당에 갔다.
쌍청은 천지 사이에 가장 맑은 바람과 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청풍명월이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했다.
고상한 단청과 고즈넉한 정원은 아직까지 보지 못한 보기 드문 명승지로,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점심 식사후 전민동에 있는 조선 인조때의 문신 김반(1580~1640)과 충신 김익겸(1614~1636)의 묘를 돌아 봤다. 김반은 사계 김장생의 아들로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쳤고 사후 영의정에 증직되었다고 한다.
김익겸도 과거에 합격 벼슬길에 올랐으나, 다음해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관군을 도와, 강화도서 청과 대항 하던중 순절한 충신이라고 했다.
내려오는 길옆에 서포 김만중 선생의 문학비에 사친이란 시가 적혀 있었다.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오늘 아침 사친에 시 쓰려 하는데
글씨도 이루기 전에 눈물 먼저 가리우네
몇 번이나 붓을 적시다 도로 던져 버렸나
응당 문집 가운데 해남의 시 빠지겠네
1689년 9월 25일. 어머니 생신날에 남해에서 유배중 쓰신 시란다.
효자 김만중 선생이 어떤 분이실까? 그리워 해보며 버스에 올라 연산으로 향했다.
조선시대 사립 학교인 돈암서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조선 예학의 본산으로 당대 최고의 기호 사람으로 존승 받았던 사계 김장생을 추모하기 위해 1634년에 세워진 서원으로 김장생, 김집, 송시열, 송준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유구한 역사와 문화 전통을 가진, 대전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가슴 가득 우리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여건이 허락 된다면 이런 행사가 자주 열려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고 공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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