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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도서관]한(恨)과 애(哀)의 경계를 넘어서-방랑시인 손곡 이달/김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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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람 15-07-07 17:34 조회871회 201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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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도서관]한(恨)과 애(哀)의 경계를 넘어서-방랑시인 손곡 이달/김정명

()과 애()의 경계를 넘어서-방랑시인 손곡 이달

 

김정명

 

홍성도서관?한국도서관협회?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홍성의 숨겨진 문인과 문학 이야기-홍성의 알려지지 않은 문인과 문학작품을 찾아서-라는 내용으로 전문 강사에 의해 인문학 특강이 이루어졌다.

515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3강과 현장답사가 있었으며, 626()에는 마지막 특강인 후속 모임이 홍성도서관 3층 전시실에서 있었다   

지난 521() 홍성이 낳은 비운의 방랑시인 손곡 이달이란 주제 강연에 많은 관객이 참여하였다. 강사는 까랑까랑한 목소리의 김정헌 향토사학자였다. 이미 홍성 여성회관에서 조선 후기 김성달?이옥재 부부의 삶과 문학을 문희순박사에게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과 흥미는 더욱 고조되었다. 

그동안 홍성에 살면서 빛나는 업적의 위인들이 많아서 그들의 삶의 여정과 정체성 그리고 후세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서적과 역사박물관 등을 통하여 찾아가고 있었다. 

홍성이 낳은 방랑시인 손곡 이달에 대한 인문학 강의 및 현장답사 등이 있다는 특별한 만남은 홍성도서관에서 평생학습에 참여해 오던 중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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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곡(蓀谷) 이달(李達)은 홍성이 낳은 조선 중기(선조) 때의 유명한 시인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달이 홍길동전의 허균과 누이인 허난설헌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이다. 손곡 이달 시인의 호()는 손곡(蓀谷)으로 고향은 충남 홍성군 구항면 황곡리 하대마을에서 출생하고 자란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달은 한동안 강원도 원주시 원성군 부론면 손곡리에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호()를 손곡이라 지었고 그밖에 서담(西潭)?동리(東里)로 불렸다   

하대마을 입구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왼편 작은 산언덕 위에 생가 터를 답사했는데, 오래된 낡은 농가의 모습으로 시비(詩碑)라든가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없어서 애닯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내 발길은 떨어지지 않았으며 쓸쓸한 적막감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손곡 이달은 고려시대의 문장가인 쌍매당 이첨(李詹)의 후손으로 부친 이수함(李秀咸)과 홍주 관기(官妓) 사이에서 출생한 서얼(庶孼) 출신으로 전해진다. 그의 재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지만, 당시의 사회적 신분의 한계로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시()를 벗 삼아 설움과 울분을 달래면서 자유분방하게 방랑생활을 하였다. 손곡 이달의 생몰 연대와 평생에 대한 자료도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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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달은 한리학관(漢吏學官) 재임되었지만, 스스로 오래 있기를 거부하고 사퇴한 후, 방랑생활을 계속하였다. 그의 생애는 (1539(중종 34)? (광해군 4)이라고 최근 연구에 의해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손곡집(蓀谷集은 제자인 허균이 평소에 기억하던 시()를 모아 61(360여 수)으로 정리 편찬하였다. 이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달이 태어난 홍성에도 관련된 자료가 거의 없으므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결성헌지 등 옛 문헌과 홍주읍성 서쪽 성벽 옆에 이달의 시비(詩碑)가 있다. 그리고 일본국회도서관에는 손곡집과 난설헌 시집을 한 권으로 묶어 놓은 책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길 위의 인문학에서 특별한 만남으로 알게 된 홍성이 낳은 방랑 시인 손곡 이달은 비록 서얼이라는 사회적 신분 때문에 자신의 뜻을 굽힌 듯 하였지만, 드라마틱한 삶의 여정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과 교우하면서 애절한 시()로 장식하므로써 후세에 길이 빛나는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그의 제자였던 허균과 허난설헌은 스승의 깊은 뜻을 헤아렸다. 특히 허균은 스승에 대한 믿음과 강한 의지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던 주옥같은 아름다운 시()를 모아 손곡집(蓀谷集을 세상에 남기게 되었다. 그의 시()의 주된 감정은 원망과 슬픔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당시의 분쟁과 사회제도 속에서 가난과 헤어짐을 겪으면서 슬프고 고통스런 현실을 방랑하며 지은 시()이다. 더욱이 우의를 다지며 절친하게 지냈던 당풍(當風)으로 시를 널리 알렸던 손곡 이달, 고죽 최경창, 옥봉 백광훈)을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고 하였다  

손곡 이달과 조우(遭遇하게 된 인연은 그의 운명적인 삶에서 그윽하게 피어오른 많은 시와 삼당시인의 우정 그리고 사제지간에 이루어진 순수한 사랑과 존경은 겸허한 인내와 각고의 노력의 달콤한 열매로 맺어졌다. 어둠 컴컴했던 이른 새벽을 밝히는 촛불은 이 세상을 더욱 밝게 해 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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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홍성은 너와 내가 오랫동안 살아오고 있는 타향이 아니며 우리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며 삶의 터전이다. 우리 고향이 낳은 손곡 이달의 시()의 향기가 그윽하게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예맥요(刈麥謠)>

 

시골집의 젊은 아낙은

저녁거리가 없어서

빗속에 나가 보리를 베어

숲 속으로 돌아오네

생나무는 축축해서

불길도 일지 않는데

문에 들어서니 어린애들은

옷자락을 잡으며 우는구나

 

* 홍주 읍성 서문 부근의 손곡 이달의 시비(詩碑)

 

 

<()은 끝없어라>

 

우물가엔 오동나무

술병은 비었는데

먼 하늘엔 밝은 달 나타나고

높은 다락엔 밤바람이 일어나네

낭군께서 혼자 장안으로 가신 뒤에

방초가 해마다 피어도 내 한은 끝이 없어라

 

먼 강 언덕에는 저년 아지랑이 오르고

차가운 강 위에는 흰 물결 일어나네

배를 대고서 사람은 뵈지 않으니

술 사러 어부 집에라도 들어가겠지

 

구름 자욱해 산은 천개의 점이 되고

안개에 잠겨 물은 하나의 흔적일세

고깃배가 노 젓다가 길을 잃었으니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 아니던가

 

 

<허균에게>

 

나그네의 시름은

겨울을 맞아 더하고

고향 그리는 마음은

밤이 되면 더 깊어지네

어둠 속의 귀뚜라미는

벽 가까이서 울고

차가운 이슬방울은

성김 숲속으로 떨어지네

서울 길에 나그네 된지도

벌써 오래인데

산과 바다에 노닐자던 마음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네

향을 사르며 앉아

잠도 이루지 못하나니

궁궐의 시계 소리 따라

밤만 더욱 깊어간다네

 

<호숫가 절에서>

 

호숫가에 노를 멈추고

잠시 흐르노라니

물 언덕 비탈 위로

버들 늘어져 있네

병든 나그네의 외로운 배는

밝은 달빛 속에 있고

늙은 스님의 그윽한 절간엔

떨어지는 꽃잎이 많구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 아득히

향그런 풀밭 널려 있지만

고향 길은 멀고도 멀어

물결 저 너머에 있네

홀로 앉아 구름 바다 저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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