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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립마동도서관]길 위의 인문학 강의 듣고 탐방하고/이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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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립마동도서관 15-07-01 14:04 조회605회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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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립마동도서관]길 위의 인문학 강의 듣고 탐방하고/이순옥

길 위 인문학강의 듣고 탐방하고

 

이 순 옥

 

박경옥 강사님의 열정적인 강의에 청중은 모두 홀딱 반했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으로부터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말기까지 역사를 배우는 두 시간은 마치 잠깐 눈을 떴다 감은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이야기 때는 소나무를 베어다 거북선을 만든 것과 군사가 모자라 강강수월래를 하며 빙빙 돌게 해서 군사가 많아 보이게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신재효 선생의 판소리 사설 개작의 이야기를 하려니 시대상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역대 임금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신재효선생은 판소리 개작과 판소리 사설의 집성자이며 판소리 후원자이자 판소리 창작자이며 판소리 이론가임을 설명했다. 판소리는 다섯마당인데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부가, 적벽가이다.

우리의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고 했다.

신재효 선생의 책에는 우리의 판소리와 예악이 중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갈 것이며 세계에 우뚝 설거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다. 그 옛날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추사 김정희 선생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신재효 선생 이야기는 처음으로 접했는데, 신재효 선생이 훨씬 훌륭한 것 같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사설을 개작하고 가난한 자나 천민이나 가리지 않고 대접하며 선생님 집에서 먹이고, 재우고, 가르쳐서 훌륭한 제자를 키웠으니 오늘까지 판소리가 전수되어 내려온 것이 아닌가. 거기에는 자신의 많은 재산도 내놓아야 하는 투자가 있었을 것이며, 나라에도 세금을 아낌없이 바쳤다고 했다. 그러기에 흥선대원군도 알아주는 분이라고 했다. 흥선대원군의 잔치에 초대받았다는 것은 친구로 여기고 초대했을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초청할 수 있는 신재효 선생님은 대단한 분이라 생각한다.

신재효 선생은 고창의 인물이요, 전북의 인물이요, 나라의 인물이요, 세계의 인물임에 모자람이 없는 분이란 생각이 든다.

 

세계무형유산에는 판소리, 한국무용, 처용가, 아리랑, 강강수월래, 감정문화, 남사당놀이, 우리가고, 대목장, 강릉단오제, 종묘제례악, 매사냥, 줄타기, 택견, 한산모시짜기, 제주칠머리당이 있다.

세계기록유산으로는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의기, 허준의 동의보감, 5·18사건기록물, 팔만대장경, 난중일기 등이 등재되어 있다. 실로 놀라운 일들이다.

 

강의를 듣는 내내 나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배운다는 것은 지식을 넓히는 것보다 중요함을 알았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 전북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제일 먼저 고창읍성에 올랐다. 입구부터 멋있었다. 오르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읍성 밖 밑을 도랑으로 파서 죽창을 꽂아 덤불로 덮어 적을 속여 성을 빼앗기지 않고 버텨왔음을 알려 주었다. 선조들의 지혜를 말해 주었던 것이다. 맹종죽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다. 읍성 안에 대나무 밭이 있는데 그 대나무 밭의 유래를 말해 주었다. 그 밭은 맹종이라는 효자 아들이 한 겨울에 죽순을 구해다 어머니를 먹여 살린 이야기다. 진정 효자였다. 척화비도 있었다. 척화비란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쓰기 위한 글을 써서 세운 비석이다.

고창의 명물 판소리 박물관에 들렀다. 그 곳에서 역대 명창과 현대 명창을 모두 만나 볼 수 있었다. 판소리 한 대목을 배우는데 참으로 힘들었다. 가요는 금방 배우는데 판소리는 가사가 잘 외워지지 않았으며, 높낮이도 특이했을 뿐 아니라 추임새도 힘들게 잘 나오지를 않았다. 판소리에는 추임새가 중요한 대목을 차지한단다. 추임새가 나오지 않아 우리는 웃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도착한 곳은 선운사, 선운산은 예전에는 도솔산이라 불렀는데 선운사가 들어서면서 선운산이 되었으며 많은 발전을 했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입구의 은행나무 이야기가 매력이었다. 은행나무의 몸통에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길쭉길쭉한 것들이 뾰죽뾰죽 나 있고 참으로 신기했다. 그 은행나무가 그리 된 것은 혼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의 증거인 것이었다. 은행나무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기르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도로를 만드느라고 나무 밑을 시멘트로 발랐기 때문에 뿌리가 물도 마음대로 흡수 못하고 뿌리가 숨도 쉬지 못하며, 영양섭취도 부족하기 때문에 살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웃긴 일화 한마디는 임신 못한 여인이 그 길쭉하고 뾰죽한 것을 만지면 임신이 된단다. 그것이 남자의 그것과 같다고 해서란다. 참으로 묘한 은행나무였다.

 

선운사에는 자유롭게 차를 마실수 있는 건물이 있는데,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건축을 했다고 한다. 모두 홈을 파서 맞추었기 때문에 못질을 하지 않은 것이다. 못이 없으니 홈을 맞추어 지었던 것이다. 예전의 건축가들의 지혜를 알 수 있었다.

또 하나 선운사 부도 전경이었다. 부도란 역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곳이다. 거기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도 모신 비석이 있었다.

죽 둘러 보면서 느낀 것은 입구에서부터 도랑이 있었는데 도랑물이 맑아 물고기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땅이 다 보이고 나무그림자가 비치었다. 사진을 찍으면 나무 그림자까지 나온다는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판소리를 흥얼거리며 외워보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 들었던 쑥대머리도 생각해보고 토끼 화상 그리는 대목도 외워 보았다. 아버지를 만난 것 같은 착각을 하는 동안 버스는 마동도서관에 도착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201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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