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평생학습관]감정을 이야기하는 그림 강연 및 리움 미술관 탐방 후기_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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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령 15-07-01 10:08 조회607회 2015.07.01본문
감정을 이야기하는 그림 강연 및 리움 미술관 탐방 후기
심은하
한 달 내내(31일) 달콤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제공한다는 모토로, 이름도 재밌는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선보이는 가게가 있다. 그곳에 가면 ‘맛보기 서비스’라는 것이 있는데 맛을 모르는 아이스크림의 ‘맛보기’를 요청하면 기존 스푼 반 사이즈의 앙증맞은 스푼으로 조금 떠서 준다.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맛보기에는 부족하다 할 수 없는, 한 마디로 감질 맛 나는 양이다. 그런데 그것에 한 번 맛들이기 시작하면 점점 더 자주, 많이, 종국에는 거의 모든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사먹게 된다.
이번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도 그런 맛보기 서비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낚인다‘ 라는 말이 좋게 쓰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런 강의를 통해 인문학으로의 ’낚임‘은 얼마든지 자처하고만 싶은 기분 좋은 경험이다.
이번에는 ‘미술’이다. 인문학의 다양한 맛 중에서도 특히나 전두엽 오른쪽 뇌의 자극을 통해 삶에 숨겨진 다채로운 감정의 맛을 음미해 볼 수 있다.
길 위의 인문학 두 번째 시간은 이주은 교수의 강연으로, ‘감정을 이야기하는 그림’이라는 주제로 19세기의 유화 작품들을 감상하며 작품 속에 녹아있는 다양한 감정을 이야기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테마로 각각의 계절이 상징하는 에너지의 순환을 인생의 사이클과 접목시켰다. 흥미로웠던 건 ‘소멸’로만 여겨지던 겨울의 새로운 해석이었다. 보통 봄은 탄생을, 여름은 번영을, 가을은 수확을 상징한다면 겨울은 언뜻 그 마지막 단계인 소멸, 즉 죽음을 상징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미지 적으로도 모든 생명 활동이 정지된 무채식의 황량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사실 그 내면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그 에너지로 인해 봄에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힘겨운 시기(겨울)를 견디어 내면 그 견뎌낸 힘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고 전보다 더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을 감상하며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그림 속에 주제를 암시하는 다양한 상징, 그 중에서도 식물이 의미하는 다양한 상징성이었다. 예를 들면 담쟁이가 의미하는 건 ‘당신에게 영원히 붙어있을래요’이다. 고사리는 겸손을 상징하고 진주조개나 달걀은 재탄생을, 오렌지는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 나르시소스의 옆에는 자기애와 자존심의 상징인 수선화가 그려져 있다. 이렇듯 식물들이 상징하는 의미를 알고 있다면 그림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얼마 전 지인이 빌려준 시집을 펼쳐드는데 갈피 속에 마른 들꽃 한 송이가 끼워져 있었다. 어찌나 예쁘던지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꽃도 꽃이지만 이름 모를 작은 꽃을 소중히 책에 끼웠을 그 이의 마음이 참 아름다웠다. 이런 낭만이 생활 속 예술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리움 미술관 탐방은 미술을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으로, 고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다양하고도 의미 있는 작품들을 두루 감상할 수 있었다.
고려청자를 시작으로 분청사기와 조선백자 고서화와 불교 미술, 금속공예품들까지 고미술품을 이렇듯 폭넓고 깊이 있게 아우르는 전시는 처음이었다.
고미술을 감상하는 일은 마치 시를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도자기의 여백이며 단순하고 깊은 색감은 시의 은유와 상징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고미술을 보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심상이 고요해진다.
고미술 전시실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마크 로스코의 작품과 자코메티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현대와 고대, 그 의외의 조합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고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현대 미술품 감상은 오감을 자극하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의 총체였다. 형식의 다양성이란 정말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작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고 어떤 작품은 근원적인 불안을, 또 어떤 작품은 상실과 허무를 느끼게 했다. 미술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작가가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느낌은 오로지 보는 이의 몫이고 권리다. 그 개별성과 다양성이야 말로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이불의 설치작품인 <심연>이다. 쌍방향의 거울과 조명으로 둘러싸인 환상적인 공간으로 들어가면 거울 속으로 무수한 나의 환영을 만나게 된다. 또한 발밑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심연 같은 공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 근원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나라는 존재의 인식으로부터 탈피해 마치 미술작품을 보듯 나를 보는 것이 아주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번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통해 접한 미술의 세계는 참으로 다채롭고 신선했다. 정형화된 삶의 모습에서 탈피해 새로운 눈으로 세상과 나를 조망하는 일은 실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작가들의 작업도 결국 그런 새로움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인문학의 가치 또한 새로움에 대한 탐구이자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재발견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난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놀이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무 어려움 없이 피카소 같은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하고, 이야기를 지어냈다. 우리가 여전히 예술을 갈구하고 향유하길 원하는 것은 그러한 어린 시절의 향수 같은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렇게 인문학과 인연을 맺게 된 이상, 앞으로 만나게 될 무수한 길 위에서도 늘 인문학과 함께하는 삶이길 바라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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