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립도서관] 인문적 상상력, 사고의 텃밭을 일구다 - 3차 탐방 "지금 그 이름은 잊었지만" /이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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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구 15-06-11 21:06 조회783회 2015.06.11본문
3차 탐방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천년 사직(千年社稷)이 망해서 천추(千秋)의 한(恨)이라 했던가......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바치고 원주, 삼척등지로 방황(유배)을 해야
했던 경순왕의 비애야 말로 다할 수는 없겠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신라의
부흥을 위하여 인제와 설악산 일대를 근거지로 항려(抗麗) 운동을 벌리다
죽은 경순왕의 아들 김부대왕(마의태자)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원주시립
도서관의 3차 탐방단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저물 즈음인 5월 30일
오전 08:00, 첫발을 내딛는다.
마의태자의 갑옷 입은 군대가 머물러서 지명도 갑둔리(甲屯里)인 인제군
상남면 갑둔리 5층 석탑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발길을 멈춘다.
이 5층석탑은 고려초(981년경) 마의태자를 기려 어느 불자가 세웠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탑 건립 양식이
고려의 전통 양식에 의한 건립이라는 점만은 고증 된 것이니 틀림은
없으리라.
마의태자의 원래 이름은 김일(金溢) 이었고 경순왕의 이름이 김부(金富)
였으나 신라 고유의 향찰법에 의해 일(溢)과 부(富)는 넘치고 넉넉하다는
것은 같은 뜻이라 하여 김부(金溥 - 넓을 부))로 칭하게 되었다는 일설이
있고 보면 김부(金富-경순왕) - 김일(金溢-마의태자) - 김부(金溥-마의태자)
의 세 이름은 결국 뜻을 같이 한다기에 마의태자를 김부(金溥)로 부르게 된
연유라고 한다.
여기서 육당 최남선의 금강산 유람기를 잠간 인용한다
"금강산에 들어가 보니 마의태자 흔적은 아무데도 없었다 마의태자가 개골산
으로 들어가 베옷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죽었다는 말은 전부 거짓이다"라고
설파한다. 그럼 고려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거짓이라는 말인가?
거짓일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까지 하지 않던가.
얼마던지 왜곡하고 비틀수 있고 그래야 신라 유민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으니
승자로서는 얼마던지 호도할 수 있겠지.......
<김부대왕 5층석탑에 대해 해설하시는 홍인희 교수>
5층석탑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일행은 인제군 상남면 깁부리에 있는
'김부대왕각'으로 향한다. 김부대왕각은 현재 군부대 시설안에 있어
함부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사전 허락을 받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원주
시립도서관의 담당자이고 오늘 우리팀을 인솔하는 김해영 사서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김부대왕각 전경>
이 '김부대왕각'은 현재 김부대왕 후손중에 한 문중인 부안 김씨 문중에서 관리
하고 있으며 매년 5월 5일과 9월 9일에 동제(洞祭)를 지낸다고 한다.
<김부대왕각에 대한 설명을 듣는 탐방단들>
'김부대왕각'을 둘러 보고 내린천을 따라 길을 달려 인제 읍내에 위치한 합강정과
중앙단에 도착한다. 합강정은 인북천과 내린천이 합쳐지는 합수머리에 세워진
정자라고 한다.
<합강정>
이 합강정은 중앙단 옆에 세워져 있으며 제사를 지내던 중앙단과 함께 500여년
인제를 묵묵히 지켜온 정자라 하겠다.
<조선시대 제사를 지내던 중앙단>
이 중앙단은 조선시대 수령 방백이 모여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이 지점이 강원도
에서 중앙으로 강원도 내의 수령방백이 모여 기우제나. 전염병이 돌면 악령을
물리치기 위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특히 두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지어 용소에
깃들인 용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옛날 비가 안오면 용소의 용이 움직이지 않아
비가 오지 않는 다면서 용을 움직이게 하려면 그에게 상대가 될 물건을 용이 사는
용소에 던지는데 용과 대적할 만한 짐승은 호랑이 밖에 없으므로 호랑이 토우
(흙으로 빚은 호랑이 모형)을 용소에 던지므로 해서 용이 놀라 비를 내리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유래된 말이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니, 용쟁호투(龍爭虎鬪)라는 성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김부대왕(마의태자)의 흔적을 둘러보고 발길을 돌리며 어느 독지가가 인제지역에
세운 노래비의 가사를 음미해본다.
- 행치령 고개넘어 백자동 고개넘어/산새도 오지 않는 깊은 산골 갑둔리
달빛 보다 더푸른 천추의 그푸른 한/나라를 찾겠노라 그 큰 뜻 품은채
어찌 눈을 감으셨나 마의태자 우리님
- 하늘이 버리셨나 바람도 스산하다/ 무덤조차 잃어버린 첩첩산중 김부리
꽃보다 더 붉은 망국의 그 푸른 한/세월아 말을 하라 마의태자 우리님 -
<정두수 작사, 조영남 노래>
1950년 6.25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싶이한 50년대 메마른 국민의 감성을
일깨워 주고 정서를 보듬어 주었던 천재시인 '박인환' 시인도 이곳 인제 출신이
었다. 청아한 목소리로 시의 감성을 잘 소화시켰던 가수 박인희가 불러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 주었던 '세월이 가면'이나 '목마와 숙녀'등의 시를 써서
낭만주의 감성을 불러 이르켰던 그 노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지고
있거니와 극심한 가난속에서도 시를 썼던 시인이었다.
그가 죽은 후 문우들이 그가 즐겨했다는 조니워커, 캬멜 담배와 함께 관속에 넣어
망우리 묘지에 묻힌지 반세기가 흘렀으나 여전히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 오지
못하고 있다. 그의 영원한 귀향이 언제가 될런지 모를 일이다.
<박인환 흉상과 그의 문학관>
<그의 문학관 현관 유리에 각인된 생전의 모습>
<박인환 문학관 앞에서>
<박인환 시비를 배경으로>
? 박인환문학관을 떠나며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세월이 가면"의 싯귀를
입속으로 읊어 보며 발길을 돌린다.
- 세월이 가면 -?
박 인 환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눈비가 올때도
나는 저 유리창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위에 나무잎은 떨어지고
나무잎은 흙이 되고 나무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올해로 나는 '길위의 인문학' 참여가 3년에 이른다. 참여하면 할 수록 학창시절
에는 배우지 못했던 역사 지식과 강원도의 속살을 여실히 헤집고 들여다 보게
되어 새로운 지식을 얻는 감격에 가슴을 떨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특히나 나와 동향(同鄕)인 홍인희 강원대 초빙교수
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재미있는 강의에 매료되었고 궂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고 솔선수범하여 우리를 안전하고 편안한 탐방이 되도록 애를 쓰신 원주시립
도서관의 김해영 사서와 임화숙 관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더욱 알찬 기획으로
발전하는 '길위의 인문학'이 되어 내년에도 참여할 수있는 기회가 주어 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며 2015년도 '길위의 인문학' 탐방 후기를 가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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