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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교육문화관] 제1차, 영화와 역사, 융복합 인문학! - 1차 탐방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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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15-06-10 15:23 조회507회 201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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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교육문화관] 제1차, 영화와 역사, 융복합 인문학! - 1차 탐방 /김미정

1. 새로운 왕조를 열다

 

길 위의 인문학, 영화를 통하여 역사 속의 한 순간으로 들어갔다.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했던 원나라가 남에서 일어난 주원장에 의해 서서히 패주하여 북쪽으로 쫓기는 원-명 교체기의 불안한 시기였다. 고려 왕조는 원의 침공을 강화도에서 버티다 투항하여 강화를 맺고 원의 부마국이 되었다. 원은 고려의 내정에 깊숙이 간섭하였고, 모든 것을 통제하였다. 원에 의해 고려의 권력이 좌우되면서 사회의 모순은 극대화 되었고,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 원을 등에 업은 권문세족들의 수탈과 횡포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이를 피해 백성들은 화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 시기에 주원장은 고려에 대해 철령이북(함경북도) 지방을 내놓으라고 한다. 원의 힘이 약해진 틈을 이용해 요동을 차지할 계획을 세운 최영과 우왕은 주원장의 요구를 거부한다. 우왕은 이성계를 시켜 요동정벌에 나서게 하지만 이성계는 4대불가론을 내세우며 위화도 회군을 한다. 그런 배경이 된 것이 영화 <해적>이다.

 

이해하기 쉽게

다가서기 친근하게

그 당시 주변 정세와 영향, 권문세족과 백성들의 모습들

역사의 전환점에서 정도전과 이성계가 만남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도시부터 정치시스템의 설계까지 조선의 밑그림을 그렸던 정도전의 백성을 위한 마음과 천재성, 그리고 이성계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 있었다.

 

2. 계유정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관상>은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는 과정을 관상이란 주제를 가지고 재미나게 표현했다. 영화를 통해 스르르 역사 속으로 들어가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은 자신의 단명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에게 자기가 죽은 뒤 어린 왕세자가 등극하였을 때,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하였다. 문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단종은 당시 12세로 어렸기에 고명대신인 김종서가 인사권 및 정권과 병권을 쥐고 섭정을 하였다. 수렴청정을 통해 왕실의 중심점 역할을 해야 할 왕대비, 대왕대비 등의 부재 상황에서 삼촌들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등의 세력이 강성해 있었다.

이에 왕권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김종서와 황보인, 조극관 등은 수양대군을 견제할 필요를 느끼고 안평대군과 손을 잡았다. 정치적 입지에 위험을 느낀 수양대군은 권람, 한명회 등과 손잡고 그들의 세력을 끌어 모아 자신의 집권에 방해가 되는 조정 중신들을 제거할 살생부를 작성하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1453(단종1) 1010()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안평대군과 짜고 역모를 획책했다고 단종에게 보고를 한다. 단종이 급히 경복궁으로 환궁하고, 한명회와 홍윤성을 시켜 광화문과 대궐문을 장악하게 한 뒤, 살생부에 적힌 자신의 반대편과 그의 가족들까지 모두 살해한 뒤 1455년 마침내 왕위를 차지한다.

이를 가리켜 癸酉靖難(계유정난)이라 한다. 계유정난의 정자가 편안히 할 정()자라 한다. , ‘난을 편안히 했다라는 뜻이라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3. 영월 탐방

 

두 번째 시간의 계유정난과 관련된 비운의 왕, 단종의 유적들을 돌아보다.

문종의 아들로 1452년 문종이 재위 24개월 만에 세상을 뜨자,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로조선 제 6대 임금으로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출산 하루 만에 승하하고, 계유정난 이후 작은 아버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내주고 15세에 상왕으로 물러난다. 이듬해 성삼문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위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물에 잠기자 영월읍내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순흥에서 금성대군 복위운동이 들통이 나서 1024일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기 전 자살했다고도 하고, 죽임을 당했다고도 한다.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

장릉에 도착하니 이동환 강사님이 반겨주신다.

 

장릉에는 단종의 역사관이 있고

그곳엔

입으로 불면

걸음걸음 단종의 유배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왕세자의 어린 시절 의복, 하루 일과 등을 볼 수 있었다.

 

장릉은 단종의 무덤으로

사약을 받고 죽었으나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자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신을 거두었다가

노루가 앉은 자리 눈이 쌓이지 않는 것을 보고

무덤을 만들어 단종을 모신 곳이다.

 

그 밑으로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

자로 꺾이는 길과 홍살문이 보인다.

 

점심을 먹고

단종이 죽기 전까지 생활했다는 관풍헌을 들러

유배지였던 청령포로 향한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그 잠깐 동안의 푸른 물길이

너무도 깊게 느껴졌다.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부인을 그리워하며 쌓은 망향탑과

한양 땅을 바라보던 노산대와

단종의 모습을 지켜보며,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지은 관음송.

 

천혜의 요새처럼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욱도 나갈 수 없는 청령포에서

단종이 지은 시를 생각해 봅니다.

 

子規詩(자규시)

 

?원통한 새가 되어 궁궐을 나온 후로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어라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 흘러서 지는 꽃이 붉구나

 

하늘도 저 하소연 듣지 못하는데

어찌 시름 젖은 내게만 들이는고?

 

...

돌아오는 길목,

내내 사소한 모든 것들을 보살펴주신 도서관 담당자 분들과

먼 길 달려오신 강사선생님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비운의 역사 속으로

푸른 물길에 갇힌 단종의 마음으로

푸욱 빠질 수 있게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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