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담긴 삶의 무늬(천리포수목원을 다녀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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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순 15-05-29 14:05 조회593회 2015.05.29본문
도서관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게시판을 눈여겨 보는 일이 드문데 ‘천리포 수목원’이란 글자가 딱 눈에 들어왔다.
신청날짜가 하루 지났지만 일찌감치 마감이 되었단다. 어플을 깔고 어쩌고 하는 수고를 한 끝에 겨우 마지막으로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얼마나 기쁜지. 일과 끝나고 달려간 도서관,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교수님의 ‘나무에 담긴 삶의 무늬’강의는 어찌나 구수한지 두 시간이 20분처럼 아쉽게 끝났다.
화성 전곡리의 물푸레나무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50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방치되어 있다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가기 시작하자 딱 두 번 거짓말처럼 꽃을 피웠다는 이야기가 신기하고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해 애쓰신 선생님의 노고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또 이란이 원산지인 가시주엽나무는 낙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낙타의 키 높이 부분까지는 잎 대신 가시를 달고 있다. 말 못하는 나무들도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니, 그런데 수목원에 있는 가시주엽나무가 요즘 가시대신 잎을 다시 피우고 있단다. 40 여 년 동안 수목원에서 살면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문득 ‘월든’을 쓴 소로의 ‘야생사과’가 생각난다. 야생에서 동물들이 잎이 나오는 대로 뜯어먹어버려 사과나무는 간신히 살아남아 역삼각형 모양의 가지와 잎을 갖게 된다는 내용과 닮아있다. 모든 생물은 환경에 맞게 적응한다고 하더니 이것이 바로 나무에 새겨지는 삶의 무늬인 모양이다.
강의가 끝난 다음날 천리포 수목원 탐방을 위해 일찍 도서관으로 갔다.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라 길이 다소 밀리긴 했지만 마지막 향기를 뿜어내는 아까시아 숲과 막 모내기가 시작되는 들녘을 내다보며 늘 시간에 쫓겨 다니는 긴장을 내려 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천리포 수목원은 1972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수목원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귀화한 민병갈 할아버지에 의해 불모지와 다름없던 태안반도의 끝자락 천리포 모래언덕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약20만평의 땅에 15000여종의 신기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세계에서 아름다운 정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을 가도 아는 만큼만 보인다더니 나무도 한 그루 한 그루 사연이 있는 것 같고 그것을 구하고 심고 가꿔온 손길들이 느껴져 수목원내의 작은 풀 한포기 조차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특히 목련이 500여 종류나 된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백나무 380여종, 호랑가시나무류 370여종, 무궁화 250여종, 단풍 나무류가 200 여 종류나 되고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의 보전과 증식을 위한 연구도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
개인이 DNA를 통한 후손을 남겨 역사를 이어가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오롯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나무사랑에만 쏟아 붇고 가신 민병갈 할아버지처럼 가치 있는 삶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사람들도 있다.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라고 하시며 한국인으로 귀화하셨던 민병갈 할아버지의 동상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활짝 피어난 갖가지 색깔의 작약 꽃들을 보며 화려한 꽃잎 뒤에 숨겨진 많은 이들의 노고를 생각해보고 진정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뜻 깊은 하루였다.
언제나 책을 보기에 최적의 환경을 유지해주고 갖가지 행사를 준비하는 도서관이 가까이 있어서 행복하다.
? 유익한 인문학 강좌와 현장탐방을 위해 애써주신 병점 도서관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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