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도서관 길위의 인문학-해파랑길에서 만난 가을(윤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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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14-11-23 10:59 조회581회 2014.11.23본문
해파랑길에서 만난 가을
윤은주(길 위의 인문학 참가자)
무르익어 가는 가을, 창원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해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경주는 생각만으로도 설렘을 주는 곳이다. 중학교 수학 여행길에 처음 대한 경주는 신비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어린 시절에 읽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이야기의 무대, 그것만으로 신비감은 충분했다. 처음 성덕대왕신종을 보았던 때 어쩐지 종소리가 슬프게 느껴진 이유도 바로 그런 이야기의 힘이었다. 어린 아이를 쇳물과 함께 녹였다는 그 슬픈 이야기의 힘.
이번 여행은 ‘해파랑길을 찾아서’의 작가 이동미 선생과 동행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사실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은 꽤 알려진 것인데 나는 이번 여행 전에는 그 길의 존재도, 이름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여행하루 전 토요일 오후에 기획된 강의를 들으며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 길이 소위 한반도 호랑이 등줄기를 따라 경주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동해안 길이며 여러 개의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파도소리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졌다는 것. 그밖에 이 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으니 일요일의 여행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 8시에 도서관을 출발해서 먼저 해파랑길 10코스로 갔다. 이곳은 읍천 주상절리와 벽화마을 등의 명소를 보물처럼 숨겨둔 곳이다. 주상절리가 이렇게 집중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산재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는 작가의 말을 듣고 또 그 주상절리가 견뎌온 시간을 헤아려보니 문득 시간 속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몇 십만 년을 바람과 파도를 견디며 말없이 존재해 온 그 거대하고 기묘한 바위들, 그것들은 한 때 열정을 이기지 못해 들끓는 용암이었으나 이제는 그저 침묵으로 세월 속에서 풍화되고 있었다. 나는 그 바위 앞에서 겨우 100년도 못되는 세월을 아웅다웅하며 사는 인간이 먼지처럼 작음을 느꼈다. 아마도 그 곳에 느린 우체통이 있는 이유가 바로 시간의 흐름 앞에 인간의 속도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우리들은 모두 정자에 올라서 엽서를 한 장씩 썼다. 나는 이제 곧 고 3이 될 딸아이에게 격려와 위로를 담아 편지를 썼다. 손바닥만 한 작은 엽서가 아이에게 배달이 될 때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과 가을의 바다도 함께 받아보기를 빌면서.
한 달에 한 번 매월 첫째 주 월요일에 편지를 꺼내 배달한다는 느린 우체통은 시간이야 어찌되었든 상관없다는 듯 그렇게 의연히 서 있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선 그 빨간 우체통을 보며 나는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아마 우체국은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 이라 했던 안도현의 시 ‘바닷가 우체국’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시는 어쩌면 이곳에서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소리를 따라 하트해변과 출렁다리를 지나니 벽화가 예쁘게 장식된 작은 어촌이 나타났다. 읍천 벽화마을, 아이들은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어댔고 나는 그곳에서 동해의 소금기를 품고 천천히 말라가고 있는 오징어를 사서 바다를 맛보았다. 오징어가 헤엄쳐 다녔던 그 짭쪼름하고 알싸한 바다가 입속으로 몰려와 온몸으로 퍼졌다.
동해는 확실히 늘 우리가 보는 남해와는 다른 맛과 멋이 있다.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남해가 수다쟁이 아줌마라면 단순하고 명료한 바다 자체인 동해는 과묵한 남자 같다. 묵묵히 억새 흐드러진 그 가을 바닷길을 걸으며 머릿속의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은 비워지고 정리되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문무왕 수중왕릉으로 유명한 봉길리 해변과 이제 탑 두 개만 남아 옛날의 영화를 말하고 있는 감은사지였다. 나는 그 해변에 갈 때마다 신화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냉엄히 살펴보면 외세를 민족의 문제에 개입시켜 반쪽 통일을 준비한 문무대왕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한 그의 의기와 민족애만은 높이 사줄만 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그아들 신문왕이 선친의 유지대로 아버지를 수장 후 감은사를 짓고 그곳에서 봉길리 바다에 이르는 용의 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만은 매력적이다. 마치 그 바다 어딘가에서 용 한마리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동미 선생은 그 길을 ‘드래곤로드’라 이름 붙였다 했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 아닌가. 늦가을의 정취를 노랗게 물들여가도 있는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마지막 설명을 듣는 것으로 여행은 끝났다. 우리 모두들 한 웅큼의 추억을 안고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경주에 올 때마다 느꼈던 천 년의 신라보다 더 길고 긴 시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가을 저녁의 낙조가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을저녁 나는 ‘길 위의 인문학’ 여행이 주는 달콤함에 젖어 느리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출렁이는 바다를 마음에 담아왔으니 이 여행의 힘으로 한동안 일상의 사소함도 이겨낼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