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도서관]새롭게 살아나는 얼(정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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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덕 14-11-10 11:29 조회630회 2014.11.10본문
새롭게 살아나는 얼
정규준(홍성도서관 문예아카데미 회원)
사람은 일생을 통해 배운다 한다. 배움이란 알지 못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일생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인생 전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금번 홍성도서관에서 주관한 길 위의 인문학 강좌는 내가 역시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위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해 가라는 뜻에서, 금번 교육은 우리 홍성지역의 충신, 인물을 대상으로 현장을 순회하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역사에 대하여 큰 관심이 없었다. 사는 것에 매달려 허덕여 왔던 나에겐 역사를 배우고 온고지신(溫故知新)하라는 옛 성인들의 말을 그냥 한가한 사람들의 사치로만 치부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번 강좌는 나의 그런 사고방식을 여지없이 깨뜨려 주었다.
우선 내가 사는 지역에 역사적 인물들의 사적지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성삼문 선생 일가와 최영 장군의 유적?유허지 등을 돌아보면서 초야에 묻힌 문화재들이 바로 주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족의 손꼽는 충신열사들이 나의 의식 속에 처음으로 기지개를 켜며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우리 속의 소중한 가치들이 무관심 속에 잠자고 있다가 오랜 침묵을 깨고 수런수런 옛이야기를 나누며 나오는 것 같다고나 할까.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멸문지화를 당한 성삼문 일가의 유적, 유허 지는 홍북면 노은리 일대 초야에 누워 있었다. 선생의 사당인 충문사와 사육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노은단, 부친 성승 장군의 묘소, 외손 엄찬 고택이 초추의 햇살아래서 후손들의 방문을 반기는 듯하다.
북소리 둥둥 울려 사람 목숨 재촉하는데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지려 하는구나
황천에는 주막 한 곳 없다 하니
오늘밤은 뉘 집에서 쉬어 갈꼬?
<성삼문 절명시>
부친이 눈앞에서 고문당하여 죽고, 어린 아들이 심한 태질로 육신이 터져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선생의 혼은 터지지 않았으랴! 멸문지화를 감당하고 충신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키며 형장으로 향하는 대장부의 비장함이 절절하기만 하다. 선생은 이미 속세의 인연을 넘어 다가올 미래를 품은 것일까?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동료들 앞에서 한 말을 보면 싸움과 단절을 넘어 화합의 초연함에 이른 듯하다.
“그대들은 새 임금을 받들여 태평성대를 열어가시오. 나는 돌아가 지하에 가서 옛 임금을 뵈올 것이오”
성삼문과 신숙주에 대하여 충신과 변절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선생의 마지막 말은 그러한 논쟁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상황 앞에서 선생이 할 수 있는 건 기우는 해의 업고를 지고 들어가, 새 시대를 감당할 남은 해들을 축복해 주는 일이었다. ‘역사의 양지로 나오지 못하면, 달빛에 젖어 신화가 된다.’지리산 등산로 입구에 써 놓은 낙서의 주인공은 성삼문 선생의 혼을 닮은 것일까? 선생은 역사의 음지로 사라지면서 후세의 영혼을 비추는 은은한 달빛으로 살아나고 있다.
이러한 선생의 정신은 고려 말, 압록강 서쪽의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어 영토를 되찾고 우국충정을 바친 최영 장군의 삶에서 시발점이 느껴진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평생 권력과 부를 멀리하며, 쓰러져 가는 고려와 공민왕에 대한 연군지정을 지키며, 새 시대를 준비하는 이성계의 손에 담담히 죽어간 장군의 넋. 오늘 날 당리당략에 찌든 이 시대 위정자한테 역사의 두 위인은 암암히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홍주의병사와 김좌진 장군 일대기는 국권회복을 위하여 죽어간 애국지사들의 애국 혼을 느낄 수 있었다. 구한말 일제 침략의 기미가 보이는 시점부터 을사늑약 전후, 한일합방 전후로 의병들의 투쟁이 많아진다. 김복한 선생이 중심이 된 홍주의병은 구한말 반일투쟁의 신호탄이 되어 전국 각지의 의병투쟁을 선도하게 된다. 이를 필두로 전국적으로 총 3,000여 건의 의병투쟁이 있었다고 하며 희생된 의병 수는 약 2만 명 정도였다 하니,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의병활동이 얼마나 활발했었는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구한말의 국권 회복 투쟁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헤이그밀사사건 정도였다. 조선이 자중지란 속에 허무하게 무너져 종말을 맞이한 줄 알았는데 많은 의병투쟁이 있었다 하니 나의 좁았던 국사관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민병대를 급조해 투쟁했을 의병들의 결연한 의지와, 일본군의 총칼에 죽어가는 한스런 눈빛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현장 체험 교육의 강도 탓인가. 어디선가 의병들의 아우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김좌진장군은 의병투쟁의 맥을 이어 전국에 걸친 조직적 독립투쟁을 하였다. 장군은 부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라났다. 그의 성장기를 보면 어릴 적부터 큰 인물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아침에 좋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가면 방과 후 남루한 옷으로 바뀌어서 돌아왔다. 가난한 동급생들의 허름한 옷이 보기 민망해 바꾸어 입었다는 얘기다. 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자 보다 못한 부모가 저지했는데 단식투쟁을 하여 끝내는 뜻을 관철하였다는 것이다.
장군은 17살의 소년 나이에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토지를 나누어주면서 가내 노비를 해방시켰다 한다. 그의 어린 시절 행동들을 보면 성정이 인간애 적이고 정의롭고 소신이 강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일제강점 후 광복회에 가입하여 가산을 독립운동에 기부하고 군자금을 모으며 독립선언문에 서명하면서 그의 독립운동사는 펼쳐지게 된다. 만주 청산리 전투의 전공은 독립전쟁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포가 쏜 총에 맞아 불의에 순국한다. 장군이 죽어가면서 한 말이 가슴을 때린다. “내가 조국을 위하여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이성우 교수는 일제 삼십육 년사에 대하여 대한민국과 일본이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를 식민지 수탈의 역사로 보고 있는 반면, 일본은 근대화론 적 사관으로 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제강점의 역사를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시키는 과정으로 왜곡하고 자국민에게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다. 국가경영의 능력이 없는 조선을 근대화 시켜주었다는 사관으로 왜곡함으로써 식민사관을 합리화시키고 종국에는 제국주의로의 귀환을 꿈꾸고 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장기적이고도 체계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응로 화백에 대한 배움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새로 조성된 화백의 생가는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 있다. 수차례 그 곳을 방문하여 산책을 하였건만 전시관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 앞에 섰을 때의 느낌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화백의 그림은 ㅣ기, 2기, 3기로 나누어진다 한다. 1기는 모방의 시기다. 관조적이고 침울한 정서가 흐르는 산수화 및 묵죽화를 모방하여 그리는 시기이다. 근대 문명에 이르지 못한 미개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통해 조선의 정체성을 묶어두고자 일본 심사위원들의 유도에 따라 그려진 초창기 회화기법이다.
2기는 살아 움직이고 현장감 넘치는 그림으로 발전한다. 멀리서 바라보고 방관하는 그림이 현장으로 뛰어든다. 산수화가 갑자기 숲속으로 관람자를 끌어들인다. 화폭 중앙에 큰 나무들이 등장하고 나무 사이로 냇물이 흐르고 상류 쪽에 희미한 사람 그림자가 비친다. 관람객들은 숲속으로 들어가 시냇물의 소리를 듣고 아낙네의 아기자기한 삶의 이야기에 끌려들어 간다.
풍속화에는 생계 공간에서 노동하며 사는 사람들이 땀 냄새를 풍기며 등장한다. 전쟁 후에 폐허를 견디고 극복해나가는 생생한 삶의 현장은 우울하기는커녕 흥에 넘친다. “서까래 하나를 네 사람이 들쳐 메고‘영차! 영차! 발을 맞추면서 옮겨 가고 있었지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사람들, 뭔가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발견하곤 했어요.”삶의 현장만큼 에너지 넘치고 생동감 있고 리얼한 곳이 어디 있으랴. 그림은 관념의 세계를 떠나 삶 속에 깊이 천착해 가고 있었다.
묵죽화는 단순히 모방의 형태를 지나 역동성이 숨쉬기 시작한다. 붓의 터치에 힘이 가해지고 화백의 기운이 실린다. 나는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니 갑자기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화백이 그림 속에 나타나 그림을 그리는 듯, 내가 화백이 되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그림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아, 살아있는 예술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고나 할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글과 독자가 하나 되어 읽고 읽히는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화백의 강렬하고 메시지 넘치는 붓 터치가 대나무 잎에서 역동적으로 춤을 주더니 사람의 형상으로 전이되면서 그림은 3기로 넘어가게 된다.
3기의 그림은 주로 사람의 상을 그리게 된다. 사람들이 깨알처럼 모여서, 이리로 몰려왔다, 저리로 몰려가며, ‘우와-’함성을 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군상>!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을 그려 넣은 그림은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단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단 한 사람을 셀 수 없이 그려가는 동안에 그는 다만 인간의 원초성만으로 사귀고 놀고 화해하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궁극적인 통일, 자유, 평화를 간구하는 꿈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제3기 그림은 동백림사건으로 인하여 화백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기간에 그려진다. 옥고를 치르며 분리된 조국, 분열된 사람들이 하나 되기를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아마도 화백의 그림은 육신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가치가 내면 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가 충신열사가 많은 홍성에서 태어나 그 치열한 의식의 분화과정을 거쳐 마침내 구현하고 싶었던 가치가 바로 하나 되는 세계가 아니었을까?
인간은 슬퍼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좌절하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라는 존재를 인식해 간다고 한다. 삶의 현장처럼 인생을 깨닫게 하는 스승은 없으며 기쁨을 누릴 장소도 없는 듯하다. 치열한 부딪침 속에서 생생히 느껴져 오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전율, 벅차오르는 희열! 화백의 그림은 파란 많은 그의 인생만큼이나 변천을 거듭하며 삶 속에서의 통일로 현현되어 가고 있었다'+location_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