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보아야할 순천의 역사와 예술” 참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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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 14-11-06 18:17 조회650회 2014.11.06본문
“되돌아 보아야할 순천의 역사와 예술” 참가 후기 요즘의 TV이나 대중 언론매체를 통하여 인문학 강좌가 열리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동안은 정부주도의 국가의 발전 계획이나 자본주의로 향하고 자하는 이들의 무의식 속에 자연 과학 분야가 끊임없이 발전, 개발 되는 동시에 그에 따른 반대급부로 인문학 분야는 늘 뒷전으로 밀려나고야 말았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성장과 퇴보를 거듭할 때 인문학의 부재로 인하여 특히 사회 교육 분야에서 지극히 장애적인 현실로 바뀌어져 버린 현재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시점에 저는 아내로부터 순천시에서 주관하는 “길 위에 인문학”이라는 강좌에 함께 참석해서 강의 들을 것을 강요당합니다. 화까지 내는 몇 번의 거절 끝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모습으로 6,28일에 고려대 유 영대 교수의 “판소리 동편제의 성립과 순천의 판소리” 라는 1차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됩니다. 사실 저는 순천 출신이 아니고 인근 광주출신이라 순천의 역사 및 예술에 대하서는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저는 순천 하면“순천 가서 인물 자랑 하지 말라”라는 속담 아닌 속담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유 교수님의 해박하고 정확한 시대적 사회적 배경설명에 판소리 대가들이신 김무규어르신, 송만갑, 송순섭 선생님들의 판소리에 대한 구구 절절한 사랑과 그 분들의 기막힌 삶에 대한 얽힌 역사를 들으면서 마치 한편의 대하소설처럼 저 에게 무지에서 상식으로 넘어 오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강의 뒤에 열린 송 순섭 선생님의 공연은 저의 타고난 국악 수면병을 이기지 못하고 맛 좋은 낙안(?)식당에서의 포만감도 즐기며 시원한 마룻장에서 약간의 코를 골며 오수까지 실컷 즐기는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송 선생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7월26일에 열린 2차 강의는 사실 제가 무척이나 배우고 알고 싶었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좁은 역사적 영역에서 볼 때 어떠한 역사가 한명도 여순사건에 대해서는 이 처럼 정확한 근거 있는 자료를 주 철희 박사처럼 내 놓치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들의 성난 시선도 두려웠겠지만 정작 미국의 앞잡이로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에게 독재와 공포로 정권을 유지 하려는 이승만 부터 군사반란 정권의 수괴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반란 수괴 정권의 압박과 폭력이 두려웠을겁니다. 반란 정권 맥락에서 본다면 여순 사건을 정권 유지의 호재로 변질시켜 남과 북으로(빨갱이) 국민 분열을 야기 시킬 수 있었고 국가 보안법 및 유신헌법 등의 악법을 계속 양산시키며 언론과 군대를 장악해서 영구집권 하려는 그들의 훌륭한 정치적 자료로 이용했을 겁니다. 광주도 80년 5월을 겪고 난 뒤에 모든 시민들이 거의 침묵 속에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때 당시 광주시민 모두는 광주의 해방군 이었으며 모두가 빨갱이였고 적색분자였습니다 젖먹이도 빨갱이요 어린아이도 아배 어매도 할매 할배도 모두가 빨갱이였습니다. 여순사건의 주변에 섰던 모든 분들은 그때 당시 아마도 이렇게 외쳤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때 광주가 옛날의 우리였어”, 오전 강의를 주관하셨던 주 철희 박사님은 저하고는 생면부지의 관계입니다 마는 여순 사건의 진실을 양파 껍질처럼 조금씩, 조금씩 벗겨 낼 때 마다 저는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분노하고 마음속으로 흐르는 긴 탄식의 눈물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맞아 그때의 광주야. 그때도 대한민국의 국가와 국민의 재산을 보호 한다는 점령군들은 그들의 폭거에 항거했던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았고 무지 몽매하게 고문 했어” 물론 주 철희 박사님의 강의와 저서가 100% 여순사건의 전말과 진실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시의 언론과 철저하게 준비된 자료들을 누가 조작했다고 이 땅위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피해자들의 구전만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승 기록이 아니지 않느냐? 여순사건을 공부하면서 제주도 4.3양민 학살 사건의 전모도 보너스(?)로 배웠습니다. 여순사건의 발단이 제주도 4.3사건이라고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여순사건의 발단이 제주도 양민을 보호하려고 제주도 출병 명령을 거부한 항명사건으로 진실을 알고 있는 지금의 학생들과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 식사 후에 순천역, 장천다리 등 유적지를 둘러보며 뜨거운 내 가슴을 식혀 주려는 듯 한 박 병섭 선생님의 구수한 사투리 설명에 다소 안정은 되었지만 마지막 유적지인 팔마체육관 한쪽 구석으로 내몰린 유적비와 두 분 유가족들의 수심어린 얼굴을 뵈올 때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어이 할꼬...... 그때 당시 우리는 반란군의 수괴가 만들어낸 프로야구 구장에서 라도 쌩 소주와 분노의 함성으로 찢겨져 내린 상처와 분노와 울분을 씻어 낼 수가 있었는데 이 분들은 무엇으로 어떤 것으로 이 들의 억울함을 씻어 낼 수가 있겠는가? 암담한 생각으로 강의를 마감할 즈음 박 선생님께는 “다음에 이곳으로 올 때에는 강의를 끝내고 막걸리 몇 잔으로 서로를 위로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이 생생합니다. 8월30일은 “순천을 거쳐 간 역사적 인물들”이라는 제목으로 백 승종 교수님을 모시고 길 위에 인문학을 펼쳤습니다. 김굉필 선생님의 성리학을 배우면서 불현듯 “처 음 처 럼”이라는 글귀가 생각이 났다. 모든 일을 처음 시작 할 때는 어떤 일 이라도 대단한 각오와 정의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그 일에 몰두해서 진행을 하다보면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 감정에서 공의를 생각하면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약진할 수가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늘 중도에서 멈춰 버리거나 처음의 목표를 자기감정으로 변질시켜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변질된 자기감정을 합리화 하기위하여 많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그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갖은 인신 공격성 표현도 서슴치 않습니다. 특히 지식인들이나 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게 별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굉필 선생은 좋은 인연으로 김종직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을 접하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칭하며 “글을 읽어도 아직 천기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소학 속에서 지난날의 잘못을 깨달았고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다해 자식 구실을 하려 하노니 어찌 구구히 가볍고 따스한 가죽옷과 살찐 말을 부러워하리오” 라고 자탄하고 평생을 소학에만 전념하여 성리학을 국가 개혁 정치의 초석에 두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선생님이시라. 하지만 윗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후대로 전해 내려오면서는 선생의 가르침대로 국가의 현실 상화에 적극적 능동적으로 대처 하지 못해 성균관의 유학이 우리들의 발전에 얼마나 많은 발목을 잡고 흔들었는지는 지금의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영화 “왕 이된 남자 광해군”에 “수탈관료의 처벌과 백성의 평안을 위해 대동법을 실시하라“는 바그네 페러디 부분은 제 생각에는 백교수님 강의의 하이라이트였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기득권 세력들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백성의 안위를 저렇게 걱정해 준다면 성군이 따로 있겠는가? 그가 바로 성군이지 이순신 장군을 우리는 왜 성웅 이순신 장군 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가? 불패의 장군이라서? 적고 보잘것없는 수군으로 일본의 대 함대를 격파해서? 자기를 그렇게 믿지 못하고 모진 고문을 했건만 임금인 선조를 위해 죽도록 충성을 해서? 아니다. 장군은 호랑이처럼 엄격하면서도 어머니처럼 자상했으며 인근 백성들이 힘들고 아파할 때 같이 힘들어하고 아파해 주었던 것뿐이었다. 백성들은 임금에게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나면 저 혼자 도망가지 말고(이승만대통령처럼) 함께 같이 싸우기를 원합니다. 국가가 어려울 때 달러라고는 만지지도 보지도 못했고 국가 돈 도둑질도 안했지만 깊은 장롱 속에 있는 금반지 비녀 하물며 자식 혼수비용마저도 아까움 없이 내어 놓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국민들을 사랑합니다. 그 일은 세계적인 국민 경제 불가사이로 모든 세계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 신기전의 거의 마지막 대사입니다. 임금이 나라를 구한 백성에게 절을 하려고하자 옆에 있던 측근이 깜짝 놀라 만류합니다. 이때 임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백성은 하늘이요 임금은 하늘의 신하라 신하가 하늘에게 절을 하는데 뭐가 잘못됐느냐”? 우리는 이러한 임금을 원하며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백성들이 되고 싶습니다. 3개월 동안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인문학 강좌가 순천의 아름다운 길 위에 펼쳐졌습니다. 동행하는 우리들은 매번 맛있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마는 그 행사를 위해 애쓰신 문과장님이하 스탭들은 즐거운 주말을 가정에서 보내지 못하게 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10월부터라도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좋은 인문학 강좌를 또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 시작되는 강좌에서는 문과장님이하 스탭들의 도움도 절실히 필요 하겠지만 강의를 함께 하는 우리들이 주축이 되었으면 스탭진 들에게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가후기를 늦게 보내드려 송구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간곡히 희망 합니다. - 1차~3차 참가자 나영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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