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립영주도서관-음악으로 다스리는 유교문화(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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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14-11-04 10:31 조회690회 2014.11.04본문
음악으로 다스리는 유교문화
-길 위의 인문학 3차 탐방, 안동-
한국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탐방 길에 올랐다. 10월을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11월의 첫날, 가을비의 긴 울림이 형형색색 곱게 물든 계절 속으로 젖어들었다. 가을빛을 잃지 않으려는 낙엽의 호흡은 탐방객을 실은 버스와 장단을 맞추며 볼거리를 충분히 펼쳐놓았다. 차창으로 흐르는 빗물이 하루의 일정에 악보를 그리며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유교문화와의 길을 열어 주었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도착한 후 일반인에게 쉽게 개방되지 않는, 유교책판이 보관된 장판각을 관람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우리들에겐 큰 행운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 윤용섭 부원장님과의 동행으로 얻은 기쁨이기도 했다. 장판각에 전시된 판본은 문중의 기탁을 받아 65,000여 판을 보관하고 있었으며 보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빼곡히 정돈된 목판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판각을 보는 순간, 지난 해 해인사 대장경세계문화축전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났던 설렘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장판각에 기탁된 판본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에 마음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우리의 목판 보관은 세계 제일이며 온도와 습도 및 기록문화로써의 가치도 세계 으뜸임을 자부할 수 있었다. 목판이다 보니 해충으로부터 훼손되는 것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퇴계선생이 제자를 사랑한 극진한 마음이 더해진 때문일까. 도산서원에서 만난 가을빛이 더욱 도드라진 빛을 뿜어냈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이 살아계실 때 제자를 사랑하는 공간과 돌아가신 후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는 사후의 공간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지금의 초등학교인 서당과 사립 중고등학교인 서원이 한 공간에서 존립하였다는 것은 도산서원을 찾는 발걸음에 의미를 한층 더 새기게 했다. 선생의 청빈한 생활과 겸허한 자세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가르침으로 자리했다.
퇴계선생은 음악으로써 유교문화를 어떻게 다스렸을까. 예는 땅의 이치, 곧 몸이며 악은 하늘의 이치, 곧 마음을 뜻하기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서로 보완해야 하는 관계다. 예는 차별인 의(義)요, 악은 평등인 인(仁)이라 했는데 예와 악을 새의 양 날개라 표현한 윤용섭 부원장님의 강의가 사뭇 귓전을 맴돈다. 음악 없는 행사가 있을 수 없고 예절 없는 음악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에 우리 민족이 예의지국이라는 수식어를 받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퇴계선생 태실로 향하던 중 이현보의 종가, 농암종택의 이정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형버스의 진입이 어려워 평소 가보고 싶었던 농암종택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농암종택으로 가는 길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퇴계선생이 태어난 태실의 방문은 우리 일행을 숙연케 했다. 다른 고가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ㅁ 자형 가옥에 돌출된 퇴계선생 태실은 문살, 문지방에게서조차 의미를 깃들게 했다. 대청마루 위, 모로 놓인 여러 개의 소반이 반지르르하다. 종부의 쉼 없는 수고가 더해진 때문일까. 가문의 내력이 깊고 웅장하게 전달되는 듯했다. 종부의 마르지 않는 손길 위로 세월 속에 묻힌 묵은 사연은 또 얼마였을까. 유난히 비좁은 뜰에 스민 퇴계선생의 정기,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일행의 표정에 사뭇 진지함이 묻어난다. 한 가문의 며느리로서 나의 위치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도 했다.
연이어 찾은 곳은 퇴계종택이다. 퇴계선생의 종손은 노쇠한 몸으로 가문의 뿌리를 잇고자 들리지 않는 귀를 쫑긋 세우며 우리 일행에게 일일이 예를 갖추며 낙관이 찍힌 “義在正我(의재정아)”를 건네시며 누구를 먼저 탓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정직해야함을 일깨워 주셨다. 대학자 집안답게 가문의 내력은 긴 세월, 마르지 않는 뿌리에서 비롯됨을 퇴계종택에서 만날 수 있었다. 퇴계선생 묘소 역시 검소함과 겸손함이 봉분을 감싸고 있었다. 선생의 정신을 따르면서 걷는 이 길이 추로지향의 고장임을 다시금 가슴에 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광산김씨 종택인 군자마을이다. 종손의 삼촌이 우리 일행을 반기며 후조당에서 500년 전통가옥의 내력을 소개했다. 이번 탐방의 주제인 “음악, 마음을 다스리다. 유교문화와 禮樂”의 진가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윤용섭 부원장은 한국정가진흥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정가의 진수를 배우는 귀한 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가를 만나고 배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이황의 시조 “청산은 어찌하여”에서 떨림와 울림, 굴림을 통해 정가는 우리 민족의 혼이 깃든 음악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정신에서 오는 예술, 정가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유교와 예악의 만남은 상생이며 상호보완이다. 유교는 예악으로 몸을 닦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학문이다. 서양 음악과의 차별은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며 학문과 예술을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전통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멋, 우리 음악의 묘미다. 음악으로 다스리는 유교문화를 찾아서 떠난 ‘길 위의 인문학’,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