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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 참여후기 (동해시립북삼도서관 정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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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운 14-11-03 16:20 조회654회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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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 참여후기 (동해시립북삼도서관 정용옥)

3,4차시. 이진모 교수와 함께 한 관동팔경의 가치와 문학 I, II 

늘 바쁘게 살던터라 이런 인문학 탐방은 생천 처음이라 무척 설레고 기대도 되었다. 관동대 이진모 교수님의 사전이론 수업을 가슴깊이 세기며 북삼도서관에서 주선한 버스에 탑승을 하고 관동팔경 탐방길에 나섰다.
이북에는 갈 수 없으니 삼일포와 총석을 덮어두고 두어시간만에 고성 청간정에 도착하자 탁트인 동해바다가 가슴 후련하게 우리를 안아 주었다.
사는 곳이 동해인지라 늘 바다를 접하고 살지만 이렇게 모든것을 다 내려놓게 하는 심금을 움직이는 바다 풍경에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그야말로 위치한 자리가 무한대의 일품이요 명다이었다. 그 옛날 송시열이 썼었다는 현판이 지금은 아닌것에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당대 성현인 우암 송시열이 이곳을 다녀간 흔적을 찾아보았다. 여기 청간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새기고 무엇을 다짐 했을까?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강직한 성품은 저 넓디 넓은 바다에서 안아 왔을까? 세세한 세태의 찌꺼기들은 이 바다속에 내려 놓았을까?
뿌연 안개속에 성현이신 우암 송시열 할아버지를 정중히 내려놓고 양양낙산사 의상대로 향했다. 

의상대 또한 위치한 자리가 보통의 명당이 아니었다. 관동팔경안에 당당히 들어 갈 수 있었음이 확연히 보였다. 신라 문무왕때 의상이 창건한 낙산사에 정자이름이 의상대로 명명된건 오히려 감사했다. 의상대에 오르니 뜬금없이 2005년도 큰 화재가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보물 제 479호인 동종이 녹아 버린것도 가슴싸하니 아깝구 애처로웠다. 의상대 멋진 동해바다 풍경에 그동안의 모든 욕심을 한 바람에 날려 보내고 깨끗하고 잔잔한 그리고 따스함을 가슴에 꼭꼭 눌러채워 담고 그 유명한 강릉 경포대로 향했다. 

? 

관동팔경속의 또 하나의 명당. 경포대에 들어서면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이 먼저 가슴에 와 닿는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6호. 1층, 2층, 3층 까지의 정자, 기둥 32개 정면 6칸, 측면 5칸 참으로 넓은 정자임에 가슴까지 후련했고, 잔잔한 경포호수는 참으로 아름답다.
이곳에서 시, 문예와 노닐었을 선인들이 슬금슬금 부러워 진다. 천정에 자리한 율곡선생의 글에서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다시 한줌 몰래 가슴에 담아 넣고 경포대를 나섰다.
오전 일찍 출발했는데 벌써 오후 4시가 훌쩍 넘어간다.
나머지 관동팔경의 일자가 정해진 21일 다시 모여 이번에는 젤 아래 경북울진의 월송정으로 향했다. 

송강정철이1580년도에 강원도관찰사로 머무르면서 맨 마지막에 읊은 관동팔경인 것이다.
월송정을 향하는데 주위가 온통 하늘이 안보일만큼 적소나무의 향연 장이였다.
빽빽한 소나무숲을 지나 월송정에 오르니 그야말로 천상낙원이 따로 없는듯 내몸도 두둥실 떠오르는 듯했다. 앞은 끝없이 푸르디푸른  바다요 옆은 울창한 적소나무의 군락이다.
몽매한이라도 시성 한 수 쯤 저절로 나올 경치였다..
창건은 고려시대이고 지금 이정자는 1980년에 고려시대의 양식을 본따서 새로 창건한 것이라고 한다. 아주 깔끔하고 단청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으며 바다를 등지고 반듯하니 서있었다.
월송정부근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망양정으로 향했다.
버스 속에서 살짝 눈을 감으니 영상들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옛날옛적신라화랑들이 이 모래벌에서 활과 창으로 무예를 겨누는 장면들. 담소하며 울창한 솔숲을 거니는 장면들. 정자에 앉아서 시성을 나누는 모습들. 참으로 평온하고 단아한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었다.
자아~~ 내리 세요~~ 깜짝 눈을 뜨니 벌써 망양정에 도착인가 보다.
깜짝 눈을 뜨니  벌써 망양정에 도착인가 보다.
작은 돌계단을 사뿐 돌아 한참을 올라서니 역시 또 하나의 절경이 시야 가득하다.
조선숙종이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 하여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하사할 정도이면 가히 짐작이 가는 터. 끝없이 넓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있는 이시야에 어느 누구가 쪼잔하고 소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랴.
정조임금의 어제시와 숙종임금의 어제시가 누각안에서 후세인을 반긴다.
정자계단을 올라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눈앞에 숙종임금의 어제시가 눈안에 들어온다.
  * 이뭇 멧부리들이 첩첩이 둘어있고
  * 놀란 파도 큰물결 하늘에 닿아 있네
  * 만약 이 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
  * 어찌 한갓 삼백 잔만 마시리 

  

숙종이 월송정 그림을 보고 이런 어제를 내릴 수 있는 정도면 가히 경치를 짐작하고도 남으리~   

오늘 우리들의 해설사이신 울진 문화원장님의 망양정 극찬은 시간이 가도가도 끝날줄을 몰랐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흘러 3시가 넘어서고 우리들은 서둘러 삼척죽서루로 향했다.
고려 말에 허물어졌던 것을 1403년 당시 삼척부사 김효선에 의해 다시 건립 되었다고 한다. 동해에 바짝 붙어있는 죽서루이지만 어찌 어찌 살다보니 가까워도 찾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길 위의 인문학이란 타이틀을 안고 들어서는 죽서루는 사뭇 다른 감흥이였다.
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올랐으면 자연석이 대리석보다도 더 윤기가 있을까?
돌로 덮여 있는 길이 반짝 반짝 윤이 났다. 올록볼록하고 아주 반지르르한 돌계단을 올라 유유히 흐르는 오십천을 끼고도는 강가에 우뚝 선 죽서루~~!
? 

송강정철을 기리는 비석도 한켠에 높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정자들은 다하나같이 다시 복원도하고 예쁜 단청을 하고 있었는데 죽서루 위에 올라서자 옛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단장하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역사 스러워었다. 

관동팔경 중 삼일포와 총석정만 빼고 두루두루 다 보았건만 정자가운데 기둥이 있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해설자의 말을 빌리면 신분이 높은 분이 기대어 앉도록 했을것이라는 해설이였다.
특이 한것이 또 있었는데 정자밑층에 자연석을 주춧돌로 사용하여 기둥마다 높이가 달랐다. 하나같이 빼어난 관동의 절경을 다 본후에 죽서루를 보아서인지 아니면 시대가 변해서인지 오십천을 제외하면 주변경관이 그렇게 썩 좋은 것은 아니었는데 정말 궁금 한것이 있었다.
이 죽서루가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보물 213호로 지정된 이유와 뜻이 무엇일까?
자연석의 주춧돌? 정자 가운데 기둥? 해답을 못찾고 있는데 이렇게 저렇게 날이 저물어 동해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엇더니
관동 팔백리에 방면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이술 가져다가 사해에 고로논화
억만 창생을 다취케 맹근후에
그제야 고쳐 만나 또 한잔 하잣고야~~

온 민중을 잘 이끌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감탄스러이 표현할 수 있단말인가.
어찌 이런 가사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보면 볼수록 놀랍고도 놀라웁지 않을 수가 없다.
전문곳곳에 임금을 위하는 충심과 민생을 진심으로 위하는 구구절절. 뉘라서다 헤일건가~
관동별곡의 전문을 다시금 다 읽으며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이번 길 위의 인문학~~~ 참으로 유익한 날들이었다.

 

끝으로 주관 인문화체육관광부에 감사하고 시행인 한국도서관협회에 감사하며 모집하여주시고 직접 인도하여주신 동해북삼시립도서관 강성운관장님께 더 더욱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정서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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