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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 참여후기 (동해시립북삼도서관 한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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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운 14-11-03 15:43 조회666회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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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 참여후기 (동해시립북삼도서관 한혜연)

길 위의 인문학

수강생 한혜연

 

1차시. 김남득 시인과 함께 한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애와 문학

 

이른 여름 온 몸을 감싸는 더운 공기에 숨이 턱까지 올라온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와 6살 둘째의 손을 맞잡고 [길 위의 인문학]기행을 떠났다. 김남극 시인님을 뵙고 설명에 따라 400년 전의 한 여인, 허난설헌의 생가와 시비와 둘러보았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 했던가...’ 동해로 이사 온지도 8년.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싶어 괜스레 혼자 얼굴이 화끈거린다. [길 위의 인문학]을 통해 오늘의 강릉은 어제의 강릉과는 다른 곳이다. 스쳐지나가는 기와집 하나 작은 비석 하나에 새겨진 의미와 역사가 느껴진다.

여인의 몸으로 재주가 뛰어난것이 네 죄다!

 

빼어난 문장으로 중국과 일본에서 일찍이 인정받았으나 여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나고 자란 조선에서 외면당한 천재 시인 허난설헌을 말한다. 허날설헌은 난설헌이라는 이름보다는『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가... 허난설헌 기념관에 도착해 처음 본 동상은 27살의 시와 문장에 능했던 여인의 당당한 아름다움보다는 신사임당이 연상되는 중년의 동상여서 어색했고 아쉬움이 남는다. 허균이 광해10년에 역적으로 몰려 참수당하며 제 아무리 뛰어난 문장가들을 낳은 당대 최고의 명문가였어도 역적으로 몰린 집안은 복원 되지 못했을터... 1990년대 들어서야 강릉시에서 허난설헌 생가 터를 사들여 그녀의 생각과 이상을 복원하려했음에 감사하지만 좀 더 세심하게 그녀의 ‘터‘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반영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허난설헌의 동상 앞의 ‘곡자(哭子)’ 시비. 허난설헌의 정신이나 기개는 물론 당대의 시간이나 양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편평하고 네모 반듯한 돌 위에 레이져 인각을 한 ‘교과서’같은 시비에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의 생각과 이상은 저리 네모 반듯한 그릇에 갇혀있어서는 안될 것 같다. 이런 저런 아쉬움은 잠시 접고, ‘곡자’를 읽고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무언가 형연할 수 없는 아픔에 애잖다. 15세에 출가를 하여 20세 딸의 여의고, 21세에 아들마저 여읜 채 뱃속의 아이마저 축복할 수 없는 어미의 슬픔과 절망 그리고 비통함이 400년이 지난 오늘의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의 여의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에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 보고 서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솔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지전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네 무덤 앞에다 술을 붓는다.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은
밤마다 서로 따르며 놀고 있을 테지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나기를 바라랴.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피눈물 슬픔 울음을 속으로 삼키네.

 

그리고 2014년 오늘...아직 끝나지 않는 슬픔이 또 있다. ‘세월호 참사’. 진도 앞바다에서 무수한 인명이 희생됐다. 더군다나 희생자의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가던 고교생이어서 미처 피지 못한 꽃봉오리를 보내는 가슴이 아리다 못해 먹먹하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 했다. 눈이 멀 정도로 슬프다는 뜻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바다와 끝을 알 수 없는 칠흑(漆黑)같은 어둠에 슬피 웁니다. 허난설헌이 두 아이의 봉분 앞에 그렇게 우는 모습이 떠올라 저도 웁니다.  400년 전 그녀의 눈물은 닦아 줄 수 없었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오늘의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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