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나는 사랑의 인문학 후기(동두천시립도서관)-정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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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14-11-02 18:00 조회617회 2014.11.02본문
사랑의 인문학 강의를 듣고
정 형 란
먼저 사랑하고 나중까지 사랑하자.
나는 다섯 살 때 실수로 오른손과 팔을 다쳐서 장애3급이다. 올해 쉰 네 살이지만 다섯 살 적 모습 그대로 주먹 쥔 상태로 마비된 오른손을 지니고 있고 팔 길이도 왼팔에 비해 15cm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런 내가 두 아들의 엄마, 한 남자의 옆 지기로 살아온 짐을 사랑의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가만 더듬어 보았다.
정말 운 좋게 멋진 부모 형제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내가 장애인 것의 불편함을 깊이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서 결혼에서 신체장애가 불리한 조건임을 온전히 체득했다. 집에서 영문번역을 하며 경제적 자립은 이뤘다. 하지만 대학 2년 동안 교제했던 남친은 장애를 이유로 반대하는 부모 형제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남친과 헤어진 후 나는 결혼을 현실적 삶이 가능한 능력이 바탕 되어야 하며 순수한 감정의 사랑은 결혼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깨우쳤다. 그러는 사이 여동생이 먼저 결혼하여 예쁜 조카가 태어났다. 언니, 오빠의 조카들과 달리 여동생의 조카를 보는 순간, 더 늦기 전에 나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책읽기 다음으로 걸어서 여행 다니기를 좋아한 나는 어디든 나와 함께 걸어 다닐 수 있는 끈기 와 인내를 지닌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 먼저 결혼한 내 친구들은 아버지같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는 든든한 존재를 선택해 안정된 가정을 꾸렸는데...) 드디어 나의 그런 꿈을 지지해 주는 남자를 마났는데 그에게는 시각장애가 있었다. 그는 만날 때마다 나의 작은 오른손을 감싸 쥐며 ‘이 손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일이 없게 해줄 거야’ 고 약속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뒤로하고 나는 그를 선택했다. 그 후의 삶은 ‘사랑의 인문학’강의가 싱겁게 느껴질 만큼 파란만장한 23년이었다.
결혼 후, 반대한 모두가 예측한 어려움들이 코앞에 나타났을 때 내가 찾아와 위로를 받은 곳이 도서관이었고 책이었다. 둘째를 유치원에 보내고부터는 주부독서토론 모임에 가입해 좋은 책뿐 아니라 인생의 쓴 맛을 관리하는 비법을 여러 회원들로부터 배웠다. 또 1주 1권 책읽기를 실천하여 올봄 드디어 천권을 넘겼다.
결혼을 앞둔 후배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다 힘들 것은 아픔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실로 그 아픔을 함께할 존재가 없을 때이다’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아픔을 대해주는 그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는 고통 속에서도 꿈이 싹트고 튼실한 씨앗이 잉태됨을... 신체장애가 아니어도 누구나 감당해야할 제몫의 십자가가 있음을 반세기 인생길에 깨우친 선배로서. 사랑의 인문학 상의를 들은 우리가 먼저 사랑해주고 더 오래 나중까지 사랑해 주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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