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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최명희를 만나다 (전주시립삼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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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14-10-27 14:37 조회787회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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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최명희를 만나다 (전주시립삼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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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불, 최명희를 만나다

            -2014년 공공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進鳳 송일섭

  전주 삼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팀원들이 최명희와 소설 혼불, 그 천의 의미를 되새기는 탐방 길에 나섰다. 먼저 한옥마을에 있는 최명희 문학관을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 중국인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우리와 똑같아 구별이 안 되는데 말이 달랐다. 관광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문학 마당에 들어서니 커다란 펼침막에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에 당선된 원고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내가 지도하는 다문화 학생에게 공모전에 제출하도록 안내하지 못한 것이 몹시 아쉬웠다. 내년에는 글을 써서 내도록 해야겠다. 원고는 4월부터 9월까지 모집한단다. 상장도 50명 이상 주었다고 한다.

  문학관에 들어섰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작가가 쓴 세로로 된 기다란 편지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 편지를 보니 옛날 사람처럼 세로로 쓴 글씨였다. 가로로 쓰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세로글씨는 삐뚤삐뚤하여 쓰기가 싫다. 그런데도 반듯하게 글씨가 정돈되었으니 명필이다.

  꿈 많은 여고 시절의 사진과 혼불의 옥고가 나열되어 혼신의 힘으로 글을 쓴 작가의 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작가가 쓴 책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개미만 한 글씨로 혼불을 베겨 쓴 작품을 가위로 잘라 놓았는데, 소설 전부를 옮겨 쓴 것이라 한다. 작가의 체취를 느끼다가 관광객에 밀려 문학관을 나왔다. 골목길을 북쪽으로 조금 걸었다. 지금은 길이 되어 버린 작가의 생가 터가 나왔다. 주춧돌조차 흔적은 없고 외롭게 산 최명희 작가 생가 터라고 비석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옆 길가의 집들은 상가로 변신하여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생가 터를 떠나 건지산 자락에 있는 최명희 공원을 찾았다. 묘는 양지바른 아담한 곳에 있었다. 이 묘지는 전북대학교 산이라 한다. 쓸쓸하게 살다간 작가를 위하여 2009년도에, 경계선을 쌓고 12지신 조각상이 새겨진 돌로 묘를 장식했다고 한다. 풍수지리를 연구한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호롱 불처럼 빛나는 복된 명당자리라 한다. 작가를 기리는 등산객들이 가끔 이 자리를 찾는다 하니 위안이 될 것 같다. 묘 앞쪽에는 작은 돌들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혼불 소설에 나온 글귀가 새겨 있어서, 오가는 등산객들의 마음을 위로라도 해주려는 듯하였다.

  우리는 곧장 최명희 아버지의 고향이며 혼불의 배경지를 찾아 나섰다. 먼저 서도역에 도착하였다. 서도역은 처음 가보는 낯선 역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간이역이었다. 도착하니 역 마당에는 아름드리 늙은 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느티나무와 벚나무라 한다. 역내에 들어가니 옛날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을 것 같은 자리에 손바닥 크기의 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돌에는 추억을 불러오는 글귀들이 가득가득 쓰여 있었다. 벽에 걸린 주인 잃은 칠판이 쓸쓸하게 보였다. 그 한편에는 서도역이란 시가 걸려 있었다. 벽면에는 아쉬움을 폭발하려는 듯 낙서가 빼곡했다.

  전남 곡성에 가면 기차 마을이 있다. 곡성 기차 마을도 서도역처럼 간이역이었다. 그런데 물동량이 많아지면서 신역이 탄생하자 서도역처럼 폐 철이 되었다. 그러나 곡성군에서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철도 공사에 함께 투자하자고 제안 하였다 한다. 철도 공사가 실익이 없을 것 같아 거부하자, 천신만고 끝에 국비의 재원을 마련하여 개발하였다 한다. 이젠 CNN이 한국의 100대 관광지로 선정하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곡성 기차 마을은 아무 주제도 없었지만 관광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젠 장미공원까지 만들어 계속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제 서도역을 보자. 서도역은 혼불의 배경지이다. 주제가 살아 있는 간이역을 남원시민들은 손을 놓고 있다. 광한루 하나로 만족하는 모양이다. 서도역은 임실과 경계에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남원과 임실군이 머리를 맞대고 개발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역내에 들어서니 길 양옆에는 국화꽃이 활짝 피어 있고 전나무 울타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로 옆 역무원이 살던 관사는 을씨년스럽게 보였고, 목을 축여 주었을 우물도 아무 돌보느니 없어 널브러져 있었다. 철로 위에는 레일바이크가 있어 관광객들이 타고 놀은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한참을 놀다가 혼불의 배경지에 세워진 문학관으로 갔다. 깨끗하게 단장된 문학관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그 위에 청호 저수지가 있었다. 본래 이 저수지는, 아주 작았는데 문학관 경관을 조성하면서 멋진 호수로 변신했다고 한다. 저수지를 조성할 때 조개 모양의 큰 바위가 나왔는데 신성시되어서 다시 묻었단다. 호수 가에는 여러 모양의 장승들이 있어서 더욱 운치 있게 보였다. 멀리 임실 성수산이 보이고 바로 앞산은 노적봉과 계간봉, 벼슬봉 등이 병풍처럼 둘려있는 아늑한 곳이었다. 낮은 산이어서 등산하기에 별 부담이 없을 것 같다. 저수지의 정자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가까운 곳에 마을이 보였다. 혼불에 등장하는 마을이라 한다. 이곳에 종갓집이 있었는데 200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2004년도에 개관된 혼불 문학관은 3만여 제곱미터의 부지에 시비 49억을 들여 조성되었다 한다. 산에 오르면 호성암 절터가 있고 마당 옆에는 새암 바위가 있는데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작가는 난소암에 걸려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옥란 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글을 쓸 때에는 원고지에 잉크를 사용하였다 한다.

혼불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지켜나간 양반사회와 평민과 천민의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단다. 그리고 만주에 있는 조선 사람들의 비극적 삶과 강탈당한 민족혼의 회복을 염원하는 모습이 담아 있다 한다. 또한, 관혼상제와 종교에 관한 것들이 전라도 방언으로 쓰여 있는 실존 소설이라는 해설을 들었다.

최명희는 전주 기전 여고를 사환 생활하면서 다니면서도,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전국 고교 문예 콩쿠르에 수필 우체부가 장원으로 뽑혀 당시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단다. 그는 1980년에 등단하여 단재상 등 여러 가지 문학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1994년에는 미국에서 문학 강의를 했다니 영어도 잘한 모양이다. 60여 명이 혼불을 연구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그 업적은 실로 놀랍다. 이제 혼불을 사랑하는 모임까지 조성되어 작가를 기리고 있으니 지하에서는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무거운 짐 다 버리고 영면하기를 바란다.

 

(201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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