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사고와 조선왕조실록(전주시립삼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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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11 13:33 조회715회 2014.10.11본문
나라에는 나라의 기록이 있고, 개인에게는 개인의 기록이 있다. 인류에게는 세계사가 있고, 개인에게는 개인의 역사가 있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사라진다.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없었다면 임진왜란 중에서 가장 치열하고 절박하며 통쾌한 장면들이 사라질 뻔했다. [안네의 일기] 역시 평범한 인간의 무관심한 악에서 비롯된 잔혹한 일면들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 그래서 시인 로가우는 말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사람은 그 책의 활자다. 국가는 그 책을 붙들어 맨 끈이고, 시대는 그 책의 한 페이지다.”
-‘ 일기를 쓰면 내가 보이고 꿈이 보이고 나의 세상이 그려진다’, 구본형-
조선 전기 4대 사고(史庫) 중의 하나인 전주사고는 조선 왕실의 발상지 경기전 내에 있다. 1472년『세조 ․ 예조 실록』이 만들어지자 성종은 양성지를 봉안사로 삼아 전주사고에 실록을 봉안하도록 했다. 이때 전라도 관찰사 김지경이 실록각을 건립하기 위하여 양성지와 더불어 경기전의 동편에 사고의 자리를 잡을 것을 왕에게 아뢰었다. 조정에서는 주변 여러 포(浦)의 선군 300명을 역군으로, 전주부윤 조근을 공역 책임자로, 순창군수 김극련이 공사를 감독하도록 하여 1473년 5월에 공사를 마쳤으며, 6월 전남루에 봉안하고 있던 실록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가 소실될 위험에 처했으나, 안의와 손홍록이 실록을 비롯한 서적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사고 내 실록은 화마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란의 와중에도 당시 4대 사고 중에 유일하게 전주사고 만이 남아 있었고, 일본군이 북상하던 지역이었던 충주, 성주와는 달리 전주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받았다.
지금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존선왕조실록』은 여러 선조들과 민초들의 힘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볼 수 있게 된 귀중한 세계적 유산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전주사고를 몇 번 방문했지만, 그동안은 단지 『존선왕조실록』이라는 역사유물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짧은 생각으로 구경했다. 역사적 사실을 접하고 난 후, 그곳을 방문했을 땐 새로운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전주사고를 나와, 전북 정읍시 칠보면에 있는 남천사로 이동했다. 남천사는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을 수호한 안의와 손홍록을 모신 사당이다. 1676년 창건하여 김후진, 안의, 손홍록, 김만정 등의 위패를 모셨다.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26년 중건되었다. 하지만 방문했을 때의 모습은 너무 초라했다. 겉모습은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추었으나, 내부는 정비중인지 아님 방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설마 방치했겠냐 싶지만), 엉망이었다. 후손들의 역사인식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남천사를 나와 칠보면에 있는 무성서원으로 향했다. 무성서원은 최치원을 주향으로 모신 서원으로, 대원군 때 전북에서 유일하게 철폐되지 않은 전북지역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필암서원, 돈암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등과 함께 무성서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9대 서원이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에 중수한 것이라고 한다. 무성서원에 들어가니 왠지 모르게 나도 그 당시의 서생이 된 듯하다. 비록 당시에는 여자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하지만 말이다. 무성서원에 계신 해설사께서 <정읍사>라는 노래를 아주 멋들어지게 불러주셨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또한 우리 가요의 애절함도 온몸으로 느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칠보면에는 매운탕이 유명하다고 한다. 유명한 매운탕을 맛있게 하는 맛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모두들 맛나게 먹었다.
두둑한 배를 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장산에 갔다. 산 안에 모든 것을 감추고 있다 하여 으름 붙여진 내장산은 조선왕조실록을 그 품에 그대로 내장하여 귀중한 자료를 무사히 보존케 한 곳이다. 내장산에 있는 용굴암, 은적암, 비래암은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어진을 이안해 수호한 곳이다. 현재 용굴암만 위치가 분명하다. 용굴암은 내장산 중에서 가장 깊고 험준한 지형을 하고 있다. 철제 난간에 의지해서 오른 용굴암은 깊고 신비한 비밀을 간직한 채로 우리에게 민낯을 보여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읍시립 박물관을 방문한 것을 끝으로 일정을 마쳤다.
많은 경험과 생각을 안겨준 탐방이었다. 3차에 걸친 강의와 탐방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이고, 전주라는 지역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나에겐 너무나도 큰 경험이자 추억이다. 낯설었던 전주가 이젠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 되었다. 너무 기쁘다.
무엇보다 탐방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사람이었다. 여러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그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앞으로 나의 남은 인생에 많은 밑거름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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