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선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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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하 14-09-27 22:45 조회726회 2014.09.27본문
{길위의 인문학} 여주기행을 마치고
오늘(9월 25일)은 여주에 있는 여강이 내뿜는 문학의 향기를 찾는 날이다. 안내와 해설은 음식문화학교 김학민 교장선생님이시다. 집결지는 수원화성행궁주차장이다. 아름다운 화성의 하늘은 높고 맑으며 햇빛도 눈부시다. 아침이라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한낮에는 약간 더울거라는 일기예보다. 선경도서관의 담당자들이 인원점검, 물병, 초콜릿, 소세지, 기념스카프, 손바구니, 안내스케줄 등을 분배하시느라 분주하다. 고마운 분들이다.
버스는 8시 30분에 출발하여 동수원 톨게이트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의 아침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도로 옆에 간혹 보이는 코스모스가 초가을의 산들바람에 한가롭게 흔들거린다. 나의 기분도 자동차의 리듬을 타며 덩달아 흔들린다. “일상탈출”은 여행할 때마다 기분 좋지만 오늘도 그 기분은 여전히 나를 사로 잡는다.
한강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합쳐져 서울을 관통하여 서해로 나간다. 옛날에 서울의 지명이 한산주였기에 서울사람은 한강이라 불렀다. 동강이니, 여강이니 하는 것은 강원도 태백산 검룡소에 발원하여 지역을 지날 때에 정선과 여주 지역의 사람들이 부른 한강의 별칭이라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브라우나 나루에 올랐다. 온통 바위언덕이다. 옛날에 선착장으로 최적의 장소였음에 틀림없었다. 반대편 강천면에서 보면 바위가 붉게 보였다 한다. 붉은빛을 띤다 해서 붉은 바위-붉바위-브라우라로 움운이 변천되었다고 한다. 브라우나 나루터의 조망이 훌륭하다. 그렇지만 걍물은 맑지 않고 부옇다.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왜 이럴까? 4대강 사업이후 변했다고 한다. 驪江은 옛말이 된듯하다. 나보다 많이 배우고 전문성이 높은 분들이 검토하여 추진하였겠지만, 무지랭이와 다름없는 내 마음이 개발과 자연보호 사이에 혼란스럽다.
리치빌리지 청소년수련원에서 도리마을 방향으로 아홉사리과거길에 올랐다. 총거리는 약3Km이다. 왼쪽에 여강을 끼고 돈다. 강건너의 갈대와 모래톱들이 아름다운 정취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가는 방향은 옛날 과거에 낙방하고 고향에 돌아가는 선비들이 걷는 길이다. 급제한 선비는 어사화 꽂고 큰길을 갔기 때문이다. 말없이 흐르는 여강 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흐른다. 낙방하고 귀향하는 선비들의 슬품과 탄식 그리고 좌절을 저 강물은 모두 만났을 것이다. 그 아품을 달래는 속삭임이 들릴 듯 한데 들리지 않는다. 나에게 많은 사색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이겠지. 중간쯤에 옛 주막터가 있다. 그곳에서는 선비들의 애환을 달랬던 부침개와 막걸리의 향이 아직도 배어 있는 듯하다. 정말 아름다운 길이다. 고려 때의 목은 이색의 시(여강에서 마음이 심란하여)가 떠오른다.
천지는 가이없고 인생은 덧없거늘 (天地無涯生有涯)
호연히 돌아갈 뜻 어디로 가려하나 (浩然歸志欲何之)
여강 한 굽이 산은 마치 그림같아 (驪江一曲山如畵)
반쯤은 그림인 듯 반쯤은 시인 둣 (半似丹靑半似詩)
반대로 걸었으면 희망에 찬 선비들의 숨소리를 들었을텐데.... 다음에 들어 봐야지.
흙, 숲, 강, 곡식, 닭과 공생공학하는 바보숲 느림보강 등불학교를 찾았다. 수원태생이지만 여강이 좋아 여강 가에 노후의 둥지를 튼 홍일선 시인이 운영하는 바보숲 명상농원이다. 이 농원에는 책이 2만권쯤 소장되어 있다. 방이고 거실이고 서재 이층계단까지 책이다. 시인은 흙님, 숲님, 강님, 곡식님, 닭님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모든 자연과 생명은 귀하고 그리운 것이기 때문에 “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한다. 바보숲이라 명명한 이유는 바보는 남한테 주기만 하고 자기 것을 챙길 줄 모르며 내어주고도 또 내어주는 범인이 닿을 수 없는 경지를 행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바보가 되기는 참 힘들다고 하시며 이를 실행하기 위함이란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다. 사물과 현상을 아름답게 그린다. 가슴깊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신다. 넓은 터에 양계를 700수를 하고 계셨다. 시인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사료의 한계가 700수이기 때문이란다. 분수를 지키고 사신다. 닭과 당나귀와 소통을 위해 음악을 들려주어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신다. 시는 자연의 소리, 강의 소리, 닭의 소리, 당나귀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의 노래라는 말씀에 시인이 되려는 초심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얼굴은 홍안으로 맑기가 옥과 같은 것은 시인의 선한 초심이 평생 일관된 탓이리라.
환경을 생각하는 하루였다. 조선시대 과거보는 선비들 마음을 알고 있는 여강의 속삭임을 들으려는 초가을의 하루였다. 인생의 가을을 아름다운 여강 가에서 멋있게 보내시는 시인의 삶과 인생을 후학들이 피부로 배우는 2014년의 가을날은 알차게 흘러갔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이 글이 수원 선경도서관에 감사를 대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멋있는 해설과 해박한 강의와 자연속의 은둔하신 시인을 소개하여 주신 음식문화학교 김학민 교장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