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종로도서관- 2014 길위의 인문학 여행 윤동주 문학 여행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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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14-08-06 17:32 조회967회 2014.08.06본문
한 점 부끄럼없는 삶이란
-길위의 인문학 윤동주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이 혜 숙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사는 삶이란 것이 윤동주시인에게는 어떤 것이었을까?
종로도서관에 책을 읽으려고 갔다가 우연히 1층 현관앞에 걸린 ‘길위의 인문학여행’이란 플랭카드를 보았다. 평소 윤동주시인의 시를 좋아하던 터라 ‘한번 가볼까?’ 하고 따라 나선
‘2014 윤동주 문학여행’ 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쓰고 영추문을 걸쳐 창성동 갤러리 골목, 통의동 백송, 이상의 집, 박노수 가옥, 누하동 골목., 이중섭 하숙집, 윤동주 하숙집을 돌아보고 둘레길을 따라 30여분을 걸어 윤동주 문학관에 이르러 그 곳을 탐방하는 여행 코스였다. 필운동에서 태어나 통인동, 누상동에서 30여년 살아온 나에게는 한국 근대시대에 많은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우리 동네에 살았었고 나와 동시대에 살았었던 분도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윤동주, 이상, 이상범, 천경자, 이중섭, 박노수.... 누상동 천경자 화백의 집은 이상범화백의 집과 마주 보고 있었다. 올 봄 덕수궁 미술관에서 천경자 화가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란 그림을 보고 ‘그 모습이 내가 아닌가’ 하고 충격을 느끼면서도 공감했던 것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 분이 내가 매일 다니던 길 옆에 살고 있었다니! 작은 흥분과 함께 스릴을 느끼면서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이상범선생의 산수화 작품은 은은하면서도 잔잔한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맞은편의 천경자님의 집은 공개되지 않아 작품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누하동 골목길을 지나 박노수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보고 설명을 들을 때, 그 집이 매국노
민영환이 그의 딸을 위해 지은 집이란 걸 알고 너무 놀랐다. 초등학교 6학년때쯤 박노수가
옥 바로 옆에 살면서 늘 굳게 닫혀 있던 그 집을 꼭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었는데...설재우작가가 보여준 ‘벽수산장’의 사진은 유럽풍의 성채와도 같은 곳으로 그 아래 있는 누추한 집들과 비교되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박노수 미술관을 지나 위로 100여 미터 올라가니 왼쪽에 윤동주 하숙집이 있었다. 1941년
정병욱과 함께 소설가 김 송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했던 곳. 아침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수송동 계곡을 산책하며 윤동주님의 시상을 떠올리던 곳. 그 분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그 곳. 그래서 그 곳에서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을 썼다고 한다. 님이 바라다 보던 그 때 그 하늘의 별을 나도 한 번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깜깜한 현실속에 서 청년의 반짝거리는 이상과의 괴리에서 오는 슬픔을......
7월 하순 무더운 날씨를 조금씩 잠재워 주는 고마운 빗방울 덕분에 시원함을 맛보며 다시 윤동주 문학관으로 가는 숲 속 산길 여정으로 들어갔다. 내가 늘 다니던 둘레길보다 푸른 나무로 뒤덮힌 조용한 산길은 우리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만 조용히 간직한 채 30분 이상 우리에게 맑은 공기와 새들의 지저귐과 냇물의 흐르는 소리로 해맑은 영혼을 선물했다. “와!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좋은 숲이 있다니!” 옆 친구의 감탄의 소리와 함께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숲으로 난 길을 걷고, 흔들다리를 건너고 해서 마침내 윤동주 문학관에 도착했다.
제1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시인의 자필로 쓰여진 시들! 시란 자신을 돌아보고 수양하는 것이라고 한 고형진 교수님의 말씀이 저절로 마음속에 와 닿았다.
‘시인은 얼마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았을까!’
‘그리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을까!’
‘창시 개명을 하고 일본 유학을 떠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기에 자화상이란 시 를 썼을까!’
‘한국어와 말을 빼앗긴 상황에서 시인을 얼마나 노래하고 싶었을까!’
‘동경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차가운 다다미방에 않아 고국의 온돌방을 얼마나 그리워했을 까!’
제2전시실을 지나 들어간 물탱크와 가압장을 개조해 만들 전시실은 원형 그대로를 놔둔채였는데, 그 곳의 깜깜한 어둠과 문틈 사이로 조금씩 흘러나오는 빛은 시인이 살았던 그 시대의 어두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으로 생각됐다. 1943년, 윤동주시인은 독립운동을 하던 송몽규와 함께 다니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2년간 처절한 옥살이를 하다가 생체실험용 주사를 맞다 절규의 외마디를 던지고 떠나간 님!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 친일로 돌아선 많은 시인, 소설가들과 민영환...... 그들과 다르게 끝까지 자시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 님의 모습에 고개를 떨구고 내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게 된다.
‘난 지금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내 삶의 끝날이 돌아와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 부끄럼 없는 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나에겐 부끄런 과거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기에.....
윤동주님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 분에 관한 문학 여행을 하면서 내내 내 마음속엔 그 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울려나고 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