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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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희 14-07-24 01:44 조회1,139회 2014.07.24본문
길 위의 인문학 탐방-삼척
고려와 조선의 소멸과 생성
홍연희
2014 원주시립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이 네 차례에 걸쳐 강의와 연계한 역사현장 탐방이 이루어졌다
네 번의 강의에 모두 참가 신청을 했지만 첫 강의는 개인사정으로 듣지 못하고 세 번의 강의와 탐방에 참석하였다
그중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고려와 조선왕조가 교차한 삼척으로의 여행을 따라가 보자
아침 일찍 버스 한 대로 삼척을 향한 일행들은 지극히 평범한 원주 시민, 언제 어디서 만났더라도 친근하게 다가 설 수 있는 그냥 한 동리 이웃 같은 사람들이었다.
여행지에서의 동행인들은 본래 작은 일에도 금방 친숙해지기 마련, 같은 지역, 같은 관심사로 함께 여행길에 오른 45명의 탐방객들은 전날 강의를 통해 들었던 삼척 곳곳의 탐방을 두고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첫 강의에 이어 세 번째 강의를 해주신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의 저자이신 홍인희 교수님의 거침없는 역사 이야기에 벌써부터 푹 빠져들었다.
고려왕조가 종언을 고하고 조선 왕조의 창업이 예언 되었던 삼척,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고려와 조선의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진 동해안 남단 삼척에 자리한 준경묘와 영경묘에 오르며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듯 거침없이 지난 역사를 리얼하게 스토리텔링해주는 홍인희 교수의 또 한 번의 열강으로 준경묘에서 이루어진 조선 창업의 예언과 금관백우(金冠百牛)의 설화, 이성계의 4대 조부 이안사의 수많은 비화를 잊지 못하겠다. 또한 준경묘에 다다르기 전 금강송 군락지에서 만난 미인송은 자태가 늘씬하고 우아하여 과연 정이품송의 신부가 될 만함에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준경묘 주변을 휘 두르고 있는 금강송은 지난 화재로 소실 된 숭레문 복원 때 유일하게 쓰인 재목이기도 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삼척에 맛있는 나물과 해산물이 곁들인 밥상을 한상 거하게 받고 공양왕릉에 올랐다. 고려를 멸망시킨 왕이었어도 정중히 예를 올리고 홍교수님의 그 시절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공손하게 왕위를 이양하였다”라는 의미의 굴욕적인 시호를 얻은 고려의 마지막 왕,
왕자 둘을 앞세우고 제일 먼저 다다른 곳은 원주시 부론면 일원의 은섬포이다
공양왕이 왕위를 잃고 원주에 머물렀었다는 사실은 원주에 살면서도 미처 알지 못하였다가 알게 되어 좀 부끄러웠다.
원주에서 간성으로 또다시 삼척으로의 유배 생활 중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 죽임마저도 정확한 사실이 남지 않아 많은 설들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삼척에 자리한 공양왕릉과 고양에 위치한 공양왕릉, 또 다른 설을 낳고 있는 간성의 공양왕릉..
고려 정계의 실세이던 이성계 일파의 치밀한 계획으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오른 왕위, 실세들의 충견 노릇을 하며 유약한 모습을 보이던 공양왕의 최후는 고려왕조 몰락의 참담함이었다.
우리의 역사는 죽임을 당하고 세력에 쫒기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렇게 흐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참담하기만 하지도 않았다.
수많은 문화 유적과 예술, 건축물의 신비함이 곳곳에 건재하고 있지 않은가.
관동 제일의 누각 죽서루에 다다라 건축 양식과 누각의 규모에 또 한 번 놀랐다.
관동팔경 대부분은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나 유일하게 삼척 죽서루만이 오십천이라는 강과 어우러져 있다. 옥색물결이 오십여차례 굽이쳐 오십천이라 하고 그 한 구비 위 신묘한 모습의 죽서루가 서있다. 죽서루 위에서 내다 본 오십천의 풍경은 가뭄으로 옛스럽지 않았으나 주변 경관은 장관이었다.
죽서루에 앉아 시담을 나누던 많은 시생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나도 그 시대 그 한량들과 한자리에서 시담을 나누었더라면 하는 상상에 빠져보기도 한다
“제왕운기”를 지어낸 이승유와 죽죽선녀의 애련이 깃든 죽서루를 이승유가 창건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절세미색이며 뛰어난 시작과 가무로 많은 남정네의 가슴을 끓였을 죽죽선녀와 이승유의 사랑이 평탄치 않았음은 보여준다.
특히나 죽서루에 남겨진 수많은 시문 중 가장 으뜸이라 일컫는 옥봉의 시문은 단 열자를 가지고 우주적 자연관과 인생의 애환을 함축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과 함께 허난설헌과 시재를 견줄만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허균의 학산초담) 하나 굳은 절개와 지조, 뛰어난 문장가임에도 조선여인의 불공평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삼척을 이야기 하려면 아직도 몇 밤은 더 지새야 될 것 같은 많은 이야기 거리-척주동해비, 미수 허목유적지, 이사부이야기 등-를 다 담지 못하였지만 우리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문화현장에서 더 가까이, 더 섬세하게, 그리고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 준 홍인희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똑똑하게 전해주신 말을 읊조려 본다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