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역사와 문화지도 탐방 3회 13년 2차(죽변면도서관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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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정 13-12-06 10:11 조회1,062회 2013.12.06본문
길 위의 인문학 역사와 문화지도 탐방 3회 13년 2차(죽변면도서관주관)
길 위의 인문학 3회 13년 2차 탐방을 다녀와서 강연과 탐방으로 된 길 위의 인문학, 이번에는 왕피천의 역사와 문화지도 에 관한 주제를 놓고 11월 20일 죽변면 사무소 2층에서 강연을 하고 11월 23일에는 탐방을 다녀왔다. 강연은 울진에 계시는 학예 사님께서 정성껏 설명 해 주셨다. 강연역시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자리가 부족해 의자를 다시 놓게 되었으니 말이다. 늦게 까지 강연을 했는데 듣는 청중들은 더욱더 많은 지식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로 인문학의 새로운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인문학 이란 책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느끼고 만지고 찾아다니며 또 다른 생각에서 시작된다고 학예사님 께선 말씀하신다. 책도 중요하지만 행동도 중요하다는, 몇 번을 강조해도 나쁠 것 없다고 하신다. 문화유산을 늘 책으로 만 보고 강의를 듣고 했지만 직접 유물이나 보물을 찾아 나서서 설명을 들을 기회는 우리에게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번에 제대로 된 보물을 찾아 깊이 새기고자 다짐해 본다. 아침 일찍 울진초등학교에 모여 관광버스를 타고 죽변을 거쳐 북면 분들을 태우고 성류굴 주차장으로 갔다. 성류굴은 울진의 자랑이요 매일보아도 지겹지 않을 만큼 신비하고 보면 볼수록 신기한 종유석들로 가득가득 하다. 입구에 당도해 굴에 들어가기 전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이신김시습의 작품 ‘울진성류굴에서 자며’를 학예 사님의 부탁으로 시낭송을 듣고 바로 아기자기한 종유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동굴의 신비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어딜 다녀 봐도 이렇게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의 세계는 없으리라. 두 번째 문화재는 울진 구산리의 삼층석탑(보물 제498호 통일신라 후기작품)은 청암사 터로 전해오는 탑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고, 높이는 3.24m 이다. 참고로 탑은 모두 홀수이다. 탑의 층수는 어떻게 셀까? 지붕돌(옥개석)을 층수의 기준으로 삼는다. 3층이란 지붕돌이 3개인 탑이다. 재질에 따라 나무로 만들면 목탑, 돌로 만들면 석탑, 벽돌로 만들면 전탑, 벽돌처럼 모방하여 돌로 만들면 모전석탑이라고 부른단다. 이번기회에 확실하게 탑세는 법을 배웠다.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멋이 한결 멋스럽고 석탑 바로 옆엔 큰 감나무 한그루가 서있는데 꼭대기에는 감이 여러 개 달려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예전의 어르신들은 까치밥으로 감나무의 감을 모두 따지 않고 몇 개는 남겨 둔다고 하여 까치밥이라고 도 한다. 옛 어른들은 욕심을 내지 않고 제철음식을 동물들과도 나누어 먹는 아주 지혜롭고 슬기로운 분들의 정이 느껴졌다. 세 번째 보러간 배잠사지 당간지주(문화재자료 제 472호) 또한 구산리 마을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후기의 작품으로 울진에 있는 유일한 당간보물 이란다. 당간이란 절 입구에 행사가 있을 때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의식 을 행하는 곳이다. 작고 아담한 배잠사지 당간지주를 보니 사찰역시 작은 절이 아니었을 까, 주위엔 온통 논, 밭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네 중앙에 있어서 소원을 빌기엔 좋은 장소인 것이 틀림없다. 경치가 아름답고 수려하여 절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네 번째엔 천연기념물 제96호인 수산리 굴참나무와 고인돌이 있는 무덤까지 탐사하게 되었다. 굴참나무는 수산리 입구의 언덕에 있으며 높이 20m, 둘레 5.94m이다. 오래되어서 인지 나무가 허약해 보이고 썩어들어 가는 부분이 많아서 수술을 여러 군데 한 모양이 안타깝기만 하다. 투박하고 큰 역경을 이겨낸 모진 세월이 고스란히 외형에 보이고, 보이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 나무 열매는 묵으로 도 옛 어른들은 만들어 먹었다. 도토리중 알이 가장 굵은 도토리가 굴참나무 열매이다. 요즘은 열매가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그 위쪽을 올라가니 고인돌이 13개가 있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발견되었고 고인돌은 땅속의 무덤을 고인돌 이라 한다. 주로 산기슭 밑에 있고 굴참나무에 둘러 싸여 있다. 울진에도 많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있는 곳이 이곳이라 한다. 제주도에는 현무암 덩어리모양으로 된 고인돌이 있다고 한다. 고인돌에 새겨진 동그란 부분(구멍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별자리를 나타내는 것도 있고, 고인돌 구멍이 10개가 패여 있었다. 동그란 모양을 암각화(돌로판)라 한다. 만져보면 부드럽고 브이자모양을 하고 있다. 학예 사님께서는 굉장히 중요하다며 분필로 표시하며 설명해 주셨다. 시대에 따라 구멍을 내는 방법도 다르고 파는 기법도 다양하다고 한다. 그것에 따라 연도별 시대를 알 수 있단다. 만져보기도 하고 손으로 체험하면서 고인돌의 역사를 읽고, 피부로 느껴 보았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굴참나무 설명은 마침 숲 해설자 이신 분이 함께 동참해 주셨는데 학예 사님의 부탁으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다시 마을로 내려가 어떤 집 마당에도 고인돌 3개가 방치되어 있었다. 강아지가 짖어서 들어가기가 참 난감했지만 이해심 많은 집주인이 강아지를 조용히 시키고 구경하시라며 자리를 비켜주셨다. 고인돌을 보면서 좋기도 했지만 우리의 소중한 유물이 그냥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만 하다. 아끼고 사랑해서 후손에게 깨끗하게 물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울타리 하나 쳐지지 않은 유물이 안쓰럽기 까지 하다. 울진에도 고인돌이 많이 있지만 집단적으로 이렇게 많이 있는 곳은 수산리 인 여기가 제일로 많다고 한다. 선조들의 숨결도 느끼며,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도 생겼다. 다섯 번째 행선지는 행곡교회(등록문화재286호), 이 건물은 울진 지역에 처음 세워진 교회로, 조선 시대 울진읍성 병사 숙소로 쓰던 건물을 뜯어서 다시 사용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울진 지역의 초기 한옥형 교회 건축물로 근대 건축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옛날 사진과 배경등을 전시해 놓았으며 여자는 왼쪽 남자는 오른쪽에 앉도록 예전 풍속 그대로 따라하면서 목사님께 즉흥연설을 청하였는데 기쁜 마음으로 응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인사 드리고 싶다. 마룻바닥을 뜯으면 밑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100년 넘은 교회로써 등록문화재는 향후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오던 문화재와는 다른 근대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내가본 문화재 중에 가장 최근 것이 아닌가 싶다. 입구에는 노란 모과가 아주 탐스럽게 열려 있었으며 목사님의 소중한 설명으로 울진행곡 교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으며 목사님의 바른 모습도 배우고 말씀도 좋으시고 새로운 만남이란 타인에게 늘 선물을 주는 것 같다. 울진에도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여섯 번째 행선지는 불영사 불영사 입구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굽이진 불영계곡 을 탐방하며 선선히 가을 하늘과 경치를 구경하며 새로운 분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20분~30분 거리를 걸어서 중간 쯤 가니 탑이 있었는데 양승당선사승탑(사리탑)이 있었다. 조선 전기의 승려인 양성당 선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었다. 양성당 선사의 이름은 혜능(惠能)으로, 12세에 출가하여 승려의 길에 들어섰다. 숙종 22년(1696)에 돌아가셨는데 화장을 하고 나니 사리가 발견되어 이곳에 탑을 세우고 그 안에 사리를 모셔두었다 한다. 탑은 사각 바닥돌 위로 납작하고 둥근 기단(基壇)을 두고,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의 옆면에는 연꽃무늬(연꽃은 자식을 상징한다고 한다.)를 둘러 새겨 놓았고, 탑신의 어깨부분에도 연꽃무늬로 받침을 이루게 한 뒤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어 두었다. 선사가 돌아가신 해인 조선 숙종 22년(1696)에 부도를 세웠으며, 부도비는 조선 영조12년(1736)에 설치하였다.(문화재청 자료) 외지고 한적한 곳에 있어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았다. 조금더 올라가니 언제보아도 아름답고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불영사 부처바위, 가만히 두 손 모으면 나 자신조차 부처가 된듯하다. 우리귀중한 아이들의 앞날이 늘 아름답게,어떤 역경이 와도 슬기롭게 대처할수 있길 두눈감고 간절히 빌었다. 연못 속에 부처님형상이 비쳐서 불영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연못입구에서 시낭송 이형기 시인의 ‘귀로’ 를 듣고 다시 한 번 커다란 가을 과 함께 마음에 담았다. 제목 : 귀로 이제는 나도 옷깃을 여미자 마을에는 등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복된 저녁상을 받고 앉았을 게다 지금은 이 언덕길을 내려가는 시간 한오큼 내 각혈의 선명한 빛깔 우에 바람이 불고 지는 가랑잎처럼 나는 이대로 외로 와서 좋다 눈을 감으면 누군가 말없이 울고 간 내 마음 숲 속 길에 가을이 온다. 내 팔에 안기기에는 너무나 벅찬 커다란 가을이 숭엄한 가을이 아무데서나 나를 향하여 밀려든다. 전시인, 이형기 : 동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대표 시로는 《죽지 않는 도시》, 《낙화》등이 있다. 불영사 연못을 지나 다섯 단계로 흘러넘치는 감로수를 한잔 먹고 대웅보전 보물제1201호를 보기전 양쪽에 대웅보전을 받치고 있는 돌거북 이 두 마리가 머리를 들고 있었다. 거북이는 불을 막는 수신의 의미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거북의 모양만 봐도 년대를 알 수 있고 몸은 대웅전 천장에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불영사를 수십 번 보고도 이번 문화탐방으로 인하여 알게 된 거북이 몸통 찾기의 재미난 학예 사님의 퀴즈를 맞히지는 못했지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듣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 졌다. 그다음은 보물 제730호 명 칭 울진 불영사 응진전 (蔚珍 佛影寺 應眞殿)유적건조물 의 설명을 들었는데 대웅전보다 먼저 지어진 보물이라 한다. 중요한 문화재를 이제 알게 되어 새삼 느끼는 것이 많다. 문화재를 탐방하고 볼 때는 꼼꼼하고 세심하게 봐야만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울진으로 돌아오는 길에 2층 정자에서 독서논술을 했다. 오늘하루를 생애가장 아름다운 날로 시작하여 멋진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힘든 상황에서도 설명을 열심히 하신 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을 그 시간에의 그림이 지금 제 마음 속에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서만 듣던 책의 내용들을 길 위에서 이렇게 들으니 더욱 가을 정취를 가슴에 새겨주고 인문학의 아름다운 저녁이 아직도 여백처럼 남아있다. 죽변면 도서관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