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립도서관 제3차 탐방 일편단심 그리고 낙화암, 춘향전,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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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구 13-11-05 20:13 조회1,400회 2013.11.05본문
이번 탐방의 안내를 맡으신 우리 산하의 인문학을 입히다를 저술하신
홍인희 강원대 교수님은 주제를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정하셨다.
일편단심, 한조각 붉은 마음.....그러나 일편단심하면 오로지 한마음, 한곳을
바라보는 것이며, 일편단심 하면 많은 사연들이 연상되지만 그중에서도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올랐다가 권력의 미치광이가 된 삼촌인 수양에게 왕위를 빼
았기고 머나먼 영월 땅으로 유배를 당해 끝내는 죽임을 당한 단종이 연상됨
은 비단 나뿐이 아니기에 홍교수님도 일편단심 으로 주제를 삼으셨으리.
원주시립도서관 제3차 길위의 인문학 탐방을 떠나는 10월 26일은 우리의
탐방을 축하라도 하는 듯 가을의 정형적인 청명한 날씨였다. 홍인희 교수님
과는 지난 5월 30일과 9월 13일 원주, 왕비의 고장, 강원도는 모향(母鄕)
이다 라는 강연과 9월 14일 탐방을 같이 하였기에 익히 알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잠간, 이건 살짝 귀뜸이지만 사실 홍교수님 과는 이곳 중학
교 동문(同門)이라서 반가움이 더했으리라.
영월 향교에 도착한 탐방단들
영월향교 인근에 차를 세우고 낙화암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도중에 서
있는 난고 김병연(蘭皐 金炳淵-김삿갓) 시비(詩碑)에 대한 해설을 열심히 경
청하는 탐방단을 카메라에 담으며, 해설을 들으며 내 몸이 바빠지기 시작했
는데 한 두잎 떨어지는 낙엽이 왜 그리 마음을 잡는지, 김삿갓에 대해서는
경향각지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방랑시인이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빼기로 하고, 발길을 옮겨 금강정(錦江亭)에 도착한다.
난고 김병연 시비앞에서
민충사를 둘러보는 탐방단들
이 민충사는 단종의 시중을 들던 시종들이 단종이 죽은 후, 주군의 뒤를
따르겠다며 동강에 몸을 던저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어진 사
당이다.
금강정에 대해 홍교수님의 해설을 듣는 탐방단들금강정은 1428년(세종10년) 영월부사로 부임한 김복항이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이름을 금강정이라 하고 현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
씨라 한다. 홍교수님은 건축양식 까지 꼼꼼히 설명을 하신다.
나는 건축양식까지는 알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건성으로 들으며(홍교수님
죄송)주위 풍광을 카메라에 몇 컷 담는다.
공주에서 강원도를 탐방하기 위하여 온 팀들 홍교수님과 기념촬영
영월 관기 경춘 순절비와 낙화암에 대해 해설을 듣는 탐방단
영월기생 경춘의 본명은 고노옥高魯玉이며 임진왜란때의 의병장 고경명
의 후손으로 그의 아버지는 양반이지만 빈한한 선비였으므로 노옥이 기생
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경춘瓊春이라고 고치고 기생이 되었다. 인물이
빼어나고 총명하며 단정한 그녀를 영월부사의 아들 이수학이 흠모하게 되
고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나, 서울로 영전해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 이수학은 이별을 하고 떠난다. 이후 내용은 남원에서 전해지는 춘향
전과 똑같이 전개된다. 평소 단종을 가슴깊이 흠모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경춘은 신임부사의 겁박을 견디다 못해 단종의 시종들이 몸을 던저
죽은 동강가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죽고 만다. 후일 사람들은 이들의 넋을
기려 이곳에 비를 세우니 월기경춘순절지처 越技瓊春殉節之處와 낙화암 落花岩
이 그것이다
정선의 아라리촌
이어 발길을 돌려 영월을 등지고 다시 정선을 향한다. 정선은 고려 망국
의 한을 품고 숨어든 고려 유민들의 한이 서린 고장,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이 이곳 정선의 현감으로 있으면서 지었다는 양반전을 아라리촌
에서 시연을 한다고 한다.
현지 주민들이 시연하는 양반전의 한장면
그 당시 양반들의 생활상과 상민들의 일상을 만들어 놓은 양반촌을 둘러
보고 아라리촌의 해설사에게 상세한 해설을 듣고 이내 발길을 돌려 남면
낙동리에 있는 칠현거사를 보러 발길을 재촉한다.
고려말의 충신 7인의 위패가 모셔진 칠현사
정선군 남면 낙동리 칠현동에 있는 칠현사七賢祠 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
7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며 7인의 대표격인 전오륜은 정선 전씨의 중
시조로써 고려의 중신이었다고 한다.
홍인희 교수에게 칠현사에 대한 내력을 듣는 탐방단들
고려가 망하고 망국의 한을 안고 고려의 유민들이 숨어들어 살면서 그 한
을 아라리我羅理라는 시를 자어 읊다가 구슬픈 가락이 붙으면서 지금의
정선아리랑이 되었다고 한다.
아라리 아리이 我羅理 啞囉肄
아라리요 餓懦彛要
아의랑 고개로 哦義郞 古稭露나모간다 懶慕艱多
아리랑의 원류가 된 도원가곡비, 도원은 정선의 옛 지명이라고 한다.
칠현의 이름이 새겨진 칠현비
도원가곡과 칠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하시는 홍교수님
칠현의 시가 적혀 있는 칠현시비
정선군 남면 낙동리에 위치한 칠현동에 있는 칠현사와 칠현의 율시비 등 그
들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불사이군(不事二君)과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반
대하여 고려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 충신들이며 양신(養臣)들이었으니, 후손
들이 기려 현대에서 찾아 보기 힘든 충신과 양신들의 귀감을 삼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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