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걸크러쉬 '허난설원'의 삶과 문학을 찾아 강릉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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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콫 18-06-22 07:06 조회519회 2018.06.22본문
모두가 바삐움직이는 아침 출근길
그러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표정과 발걸음은 그 바쁨속에서도 여유롭고 누군가에겐 그 여유로움이 부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탐방출발시간 10분전 , 분당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길위의 인문학 '21세기 조선의 걸크러쉬를 만나다'의 첫강좌 주인공이며 조선시대 여류시인 '허난설원'의 삶과 문학을 찾아 이미 내 마음은 허난설원과 함께 강릉의 짙푸른 바다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허균.허난설원의 기념공원
이공원은 허난설헌이 태어났던 생가터와 허균.허난설헌 두 오누이의 문학작품을 영상작품과 고서를 소개한 기념관, 초당가문의 허씨5문장가(허엽,허성,허봉,허난설원,허균)의 시비등으로 조성되어져 있으며 원주대학교 국문학과 장정룡'교수님께서 가이드를 맏아주셨다. 이분은 알고보니 몇주전 허난설헌 강좌를 듣기위해 도서관에서 빌려온 몇권의 책중 '허난설원 평전'을 집필하신 분이셨다.
이곳은 조선 선조때 초당 허엽이 살던 곳으로 허난설헌이 태어났으며 허균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지명인 초당은 난설헌의 아버지 허엽과 관련이 있은것으로 보이며 이집터는 토담과 주변솔밭이 조화를 이룬 '연화부수정' 명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사랑채에는 허균의 영정이 봉안되어져 있기도 하다. 집안에 들어서니 작지만 정갈하면서도 멋스러운 정원과 솔밭에 둘러싸여서인지 왠지 잔잔한 호수에 작은 물결이 이는듯이 설레임속에 평온함이 느껴졌다. 그옛날 그들도 사랑채 툇마루에 올라서면 낮으막한 담을 넘어 서쪽으로 보이는 경포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탐승하며 시를 읊고 문학성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으며 잠시나마 조선시대로 돌아가 난설헌을 만나고 온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른시간부터 서둘러서인지 점심때가 지나서인지 모두를 허기를 느낄때쯤 초당까지왔으니 점심은 두부로 먹어야지 않겠냐는 누군가의 말에 시장기가 확 밀려왔고 바닷물로 간수를 한다는 초당두부로 맛난 식사도 하고 예까지 왔으니 이왕이면 바닷가도 한번 거닐고 가자시는 탐방객들의 성화에 잠시 인목해변에서 각자 티타임도 가졌다.
물론 이후 강릉의 또다른 명소 '오죽헌'도 탐방일정에 따라 견학하고 왔다. 하지만 나에게 오늘 탐방은 유교사상의 절정을 이루던 조선시대에 한 남자의 아내, 일찍 세상을 떠나보낸 남매의 한많은 어머니, 살림보다 글재주가 더 뛰어나 시어머니의 사랑받지 못한 며느리로 평탄하지만 않았던 27세의 짧은 삶속에도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딴 시집을 남기고 한.중.일 최고의 여류시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213수의 한시집 '난설헌집'을 전한 그녀가 진정 이시대의 걸크러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표정과 발걸음은 그 바쁨속에서도 여유롭고 누군가에겐 그 여유로움이 부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탐방출발시간 10분전 , 분당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길위의 인문학 '21세기 조선의 걸크러쉬를 만나다'의 첫강좌 주인공이며 조선시대 여류시인 '허난설원'의 삶과 문학을 찾아 이미 내 마음은 허난설원과 함께 강릉의 짙푸른 바다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허균.허난설원의 기념공원
이공원은 허난설헌이 태어났던 생가터와 허균.허난설헌 두 오누이의 문학작품을 영상작품과 고서를 소개한 기념관, 초당가문의 허씨5문장가(허엽,허성,허봉,허난설원,허균)의 시비등으로 조성되어져 있으며 원주대학교 국문학과 장정룡'교수님께서 가이드를 맏아주셨다. 이분은 알고보니 몇주전 허난설헌 강좌를 듣기위해 도서관에서 빌려온 몇권의 책중 '허난설원 평전'을 집필하신 분이셨다.
이곳은 조선 선조때 초당 허엽이 살던 곳으로 허난설헌이 태어났으며 허균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지명인 초당은 난설헌의 아버지 허엽과 관련이 있은것으로 보이며 이집터는 토담과 주변솔밭이 조화를 이룬 '연화부수정' 명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사랑채에는 허균의 영정이 봉안되어져 있기도 하다. 집안에 들어서니 작지만 정갈하면서도 멋스러운 정원과 솔밭에 둘러싸여서인지 왠지 잔잔한 호수에 작은 물결이 이는듯이 설레임속에 평온함이 느껴졌다. 그옛날 그들도 사랑채 툇마루에 올라서면 낮으막한 담을 넘어 서쪽으로 보이는 경포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탐승하며 시를 읊고 문학성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으며 잠시나마 조선시대로 돌아가 난설헌을 만나고 온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른시간부터 서둘러서인지 점심때가 지나서인지 모두를 허기를 느낄때쯤 초당까지왔으니 점심은 두부로 먹어야지 않겠냐는 누군가의 말에 시장기가 확 밀려왔고 바닷물로 간수를 한다는 초당두부로 맛난 식사도 하고 예까지 왔으니 이왕이면 바닷가도 한번 거닐고 가자시는 탐방객들의 성화에 잠시 인목해변에서 각자 티타임도 가졌다.
물론 이후 강릉의 또다른 명소 '오죽헌'도 탐방일정에 따라 견학하고 왔다. 하지만 나에게 오늘 탐방은 유교사상의 절정을 이루던 조선시대에 한 남자의 아내, 일찍 세상을 떠나보낸 남매의 한많은 어머니, 살림보다 글재주가 더 뛰어나 시어머니의 사랑받지 못한 며느리로 평탄하지만 않았던 27세의 짧은 삶속에도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딴 시집을 남기고 한.중.일 최고의 여류시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213수의 한시집 '난설헌집'을 전한 그녀가 진정 이시대의 걸크러쉬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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