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시립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남한산성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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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의 17-06-09 21:30 조회377회 2017.06.09본문
길 위의 인문학, 남한산성 길
- 아픈 역사, 그리고 효종갱이와 비빔밥... -
어제 저녁, 「2017년 동두천시립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세 번째. 멀리 강화도에서 직접 운전하며 찾아온 이동미 여행작가의 남한산성길 강연을 들었다. 인문학에 관심 많은 노년의 여성들과 몇몇 남성들도 참여한 가운데 진지하면서도 호응되는 분위기에서 진행된 2시간 강연이었다.
강연에 앞서 작가님과 대화 나눌 시간이 있었다. 지난주 토요일 그 주에 들었던 강화산성길 현장을 다녀왔었다. 그때의 현장체험 경험을 나누고, 궁금했던 것도 물어보았다. 북장대터에서 바라본 강은 ‘조강’이고, 그 건너편이 개풍군이었다. 강을 경계로 눈앞에 펼쳐진 개성공단과 북한의 산하를 보았던 것이다. 진송루(북문)의 간판 글자 배열이 첨화루(서문)과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인 연유도 궁금했는데, 각각의 간판이 제조된 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북문(진송루 鎭松樓)는 박정희 시대 만들어진 현판이란다. 나무가 아닌 시멘트구조 현판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강연을 듣고 직접 현장을 다녀왔단 이야기에 작가님 표정이 밝아졌다. 이동미 작가는 내가 다녀온 서문에서 북문코스 강화산성을 중심으로 한 탐방길 선택이 탁월했다는 반응과 함께, 강화도 여행을 시대별로 정해 탐방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한다. 조선말기 외침의 역사를 보려면 ‘진’과 ‘보’와 ‘돈대’를 따라 탐방하고, 삼국시대 간척사업이 벌어지기 전 곳곳에 흩어진 사찰(전등사, 보문사, 선원사, 백련사, 정수사 등)을 탐방하며 강화도라는 영역안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공존했던 시대를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다고 한다. 그 밖에 고인돌 문화를 비롯하여 각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체험이 가능한 곳이 강화도라고 자상히 안내해 준다.
첫날 강연 들었던 수원화성 현장탐방이 다음 주 토요일(6.17)이다. 탐방에 참여 신청했다. 같이 강연에 참여한 두 여성 어르신(유○자, 박○희)도 탐방신청 했다며, 같이 가자고 하신다. 어제 강연은 남한산성이었다. 역사적으로 삼전도의 굴욕을 상상하는 곳이지만, 삼국시대부터 성으로서의 흔적이 남아 있던 역사가 살아있는 현장이다. 성내(城內)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천연의 요새라고도 한다. 2014년 경기인재개발원 교육받을 당시 명지대 한명기 교수의 남한산성 강의는 재미있었다. 강의 주제는 G2시대를 얼개로 그 당시와 지금의 우리 국내외 열강상황을 비교하는 의미 있는 강의였다. 어제 강연에서 배웠던 여러가지 중 기억할 만한 역사적 사실과 민중의 삶의 모습도 새로웠다. 남한산성은 행궁 중 종묘사직의 체계를 갖춘 유일한 성이라는 사실(* 남한산성의 ‘좌전’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산성 축조당시 남쪽 구간을 책임 맡았던 이회 장군의 고사 또한 교훈적인 내용으로 아픔을 담고 있다. ‘매바위’와 ‘청령당’에 대한 유래를 다시 찾아 읽어 보려한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인용하며, 이동미 작가는 그 안에서 대립한 신하들의 명분을 두 문장으로 인용했다.
실천 불가능한 정의
실천 가능한 굴욕
척화파와 주화파의 극심한 대립 명분을 표현한 문장이다.
앞자리에서 강의 듣던 유○자 님(7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남한산성 가면 ‘효종갱이’를 먹어 보라고 한다. 강의 듣기 전에는 ‘효종갱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는데 기회되면 한 곳만 있다는 그곳 식당을 찾아봐야 겠다. 이동미 작가의 ‘비빔밥’유래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그러면서 ‘효종갱이’나 ‘진주 비빔밥’에 담긴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을 생각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첩현장. 그러나 막대한 병력으로 재침하는 일본군에 함락당하는 상황에서, (조정에서도 포기한 몰락의 현장) 성을 지키는 지휘관과 병사, 성민들은 식량이나 장비를 적에게 넘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그릇들을 모으고, 남아있던 말과 식량들을 잡아 비벼 넣어 눈물의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는 고사. 전주비빔밥과 달리 ‘진주비비밥’에는 육회가 들어가고, 갈비탕이 나오는 이유가 그러한 역사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소현세자의 죽음은 조선역사의 물고를 바르게 놓을 기회를 놏쳤을 수도 있을 인조의 잘못됨으로도 들린다. ‘삼배구고두례 三拜九叩頭禮’(* 세번 절하고 한번 절할때마다 세번 머리를 조아림)의 치욕을 남긴 삼전도의 굴욕. 그 역사의 아픈 현장을 시간내 걸어보려 한다. 강연을 마무리 하면서 질문을 던지는 이동미 작가.
남한산성은 우리의 ***다
그 안에 채워야할 단어는 무엇인지? 어느 여성분이 ‘아픔’이리고 했다. 다른 남성은 ‘교훈’이라고 해석했다. 나는 어떤 의견을 생각했을까? 남한산성 현장을 탐방하고 그 답을 찾아보려 한다. 이동미 여행작가의 세 차례 성(城)에 대한 강연을 잘 들었다. 강화산성길 다녀오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본 지인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더라’ 인문학으로 배우고, 현장을 찾다보니, 더 실감 있게 역사의 현장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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