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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변방의 섬에서 울렸던 그날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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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19-07-30 01:25 조회327회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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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참여소감

제주도서관에서 진행한 세개의 테마에 모두 참여하였고, 길윙,ㅣ 인문학을 마치며  마지막 토론 자리에도 함께했다. 그에 대한 소감을 적어본다.
제주도서관에서 준비한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덕분에 일제 수탈과 탄압에 맞선 제주에서의 항일운동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항일운동 배경에 대한 강연을 듣고 토론하고 현장탐방을 하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전혀 모르던 운동이다.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일본 경찰들과 싸움을 벌인 정도로 알고 있다가 이번에 아주 다른 각도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와 관련해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직접 강의를 하니 아주 세세한 준비과정까지 배우게 되어 의미가 깊었다. 법정사 항일운동을 알리기 위해 많은 문서들을 뒤져 찾아내고 증명하는 과정, 관련된  주변 분들과 가족들을 수소문해 만나고 녹취하는 과정들이 감동이었다. 또한 강의 하는 곳 한편에 전시된 관련도서를 통해 이론을 더 잘 알게 되니 그 또한 기쁨이었다. 아동문학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법정사 동이라는 역사동화를 읽으며 사건을 어떻게 동화에 표현하는지에 관해 탐구하는 계기도 되었다. 개인적인 행사로 법정사 현장 탐방을 못한 게 제일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조천만세운동은 해마다 열리는 조천리 만세동산에서 열리는 3.1절 행사에 참석하는터라 알고 있는 사실들이 조금 있어서 강의가 쉬웠다. 인물위주로 강의가 이루어지니 새로운 지식들이 스며들어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다.
현장탐방을 하며 맨 처음 조천리 만세동산 독립운동가 묘비들을 둘러보았다. 독립운동가 한분한분의 업적과 일생을 파노라마로 엮듯이 설명해 주는데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것인지 지금의 자리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동하여 금대라고 쓰여진 비를 찾았다. 조천 만세운동의 발원지를 표시한 비석인데 비문에 보면 황폐해져 사라져버릴까 염려하여 돌을 깨어 대를 쌓고 이름을 금대라 칭한다는 글귀가 있다. 조천 만세운동은 만취 김시우 선생의 소상날에 맞추어 일어났으므로 그 뜻을 담아 추모하는 제자들이 만취선생 타개 7년 후인 1925년 봄에 3.1운동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이 비를 세운것이라 한다. 훌륭한 선생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는 말이 떠올랐다. 김시우, 본적 없고 이제야 듣고 있는 이름이지만 후대에까지 널리 기억될 멋진 스승이었음에 틀림없다.
오일장터를 지난 후 우리를 태운 버스는 산을 행해 올랐다. 김명식 지사를 비롯한 많은 지사들의 묘소를 찾아보았다. 관리되고 있는 묘도 있고 더러는 쓸쓸하게 누워있는 묘들도 있다. 이들을 추모하고 기리고 널리 알리는 일은 후대인 우리에게 맡겨진 소임이리라.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임도현 항일자료기념관이었다. 일본 경시청으로부터 비행술을 익힌 자로 중국으로 가는 도중에 탈출하여 항일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조카 임정범씨가 찾아낸 자료들을 보면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아직 독립운동가에 포함되지 못한 분이다. 왜? 그리고 우리는 무얼 할 수 있나? 라는 수없는 물음표를 던진 장소이기도하다. 공적이 인정되어 빨리 항일독립운동가로 인정되기를 바래본다.

마지막 운동은 해녀항일운동이었다. 제주도 해녀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여기저기 보도를 통해 해녀에 관련한 여러 가지 사실들은 많이 알고 있었다. 해녀항쟁은 많은 분들이 앞 다퉈 책으로 출간을 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 많았다. 그리 큰 기대는 없었다. 그래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신청한 강의였다. 결과는 역시 신청하길 잘했어 였다.
제주도역사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꿰뚫고 있는 분의 강의라 새롭게 알게 되는 역사가 많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오름에 해녀들이 물질을 했다는 기록이었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탐방버스를 타고 가며 문영택선생님의 해설을 듣는데 “신동국여지승람 탐라지 지형록등을 보면  15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산중에서도 좀녀들이 자맥질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졸려서 가물가물하던 의식이 확 깨어났다. 입산봉에 호수처럼 넓은 굼부리가 있고 그 호수에는 연근이 자란다. 연근을 진상하기 위해 좀녀가 자맥질을 했다. 물의 높이는 1미터 정도이지만 진흙이어서 조심스럽게 떼배를 타고 만여평에 심어진 연근을 채취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발걸음을 가벼워졌다. 그 기록을 찾아 상상하는 시간을 남들보다 조금 더 갖고 싶었다.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어서 밭과 비닐하우스로 채워진 굼부리지만 그 시절을 거슬러 상상을 해본다. 굼부리 가득 물이 출렁이고 연꽃이 핀 모습, 진상이라는 노역을 빼면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픔이 서린 여러곳들을 둘러보고 탐방을 마쳤다.
길 위의 인문학 강좌를 듣는 동안 내 자신의 정체성을 기를 수 있었다. 아프고 힘든 역사 속에서도 조국을 먼저 생각했던 빛나는 조상들이 있기에 내가 여기 있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탐방내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질문에 존경심이 들었다. 역사를 알고 이해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주워들은 생각을 떠올리며 젊은 수강생들이 다음 기회에는 더 많아지길 빌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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