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일월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 탐방후기 - 나를 채우는 인문학, 행복한 자아 찾기 03
페이지 정보
청풍 19-06-28 15:05 조회558회 2019.06.28본문
자본주의 도시는 자본을 먹고 산다. 공공질서와 인간성보다는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게 우리의 도시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시끄러운 호객행위, 건전한 상도덕마저 의심스럽게 하는 몰염치한 공간질서의 무질서와 그 타락상을 여기저기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도시적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사이버 세계에서도 정보의 왜곡, 보이스 피싱, 푸시 광고 등은 일상화되고 있다. 특히, 공공질서와 공공복리의 관점에서 도시공간을 잘 관리하여야 할 공적 기능마저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 도시의 공간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과거부터 경험하여 왔던 우리 도시들의 변화는, 이제 새로운 개념으로 탈바꿈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즉, 과거와 같이 단순하게 도시 공간수요와 이에 대응하는 집장사같은 싸구려 건축 기술에서 벗어나,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상생의 공간 개념과 새로운 도시문화에 입각하여 보다 세련된 도시공간으로 변화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모티브는 도시공간의 인문학적 접근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판단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6월 27일 시행된, 수원 일월도서관 2019년 길 위의 인문학 탐방은 의미있는 행사로 사료된다. 탐방장소는 서울 역사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윤동주 문학관, 백사실 계곡 등으로서, 전체적으로 시(詩)로 시작하여 시(詩)로 끝난 감성 충만한, 문자 그대로 길 위의 인문학다운 탐방이었다.
수원 일월도서관의 길 위의 인문학 탐방에 대한 감상은 크게 다음 3가지로 요약되었다.
첫째는 창피하다는 것이었다. 서울은 우리나라의 수도이며, 역사와 문화의 폭, 그리고 깊이에 있어서, 세계의 어느 대도시에 비하여 뒤떨어지거나 열등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궁궐인 경희궁을 제대로 복원한 것도 아니고, 그 궁궐부지에 역사박물관과 경찰박물관 등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 것일까. 또한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모형이 자신의 건물만 예쁘게 표현한 건설회사 홍보용 모형을 그대로 전시한 것, 모형 또한 서울전체가 아닌 강북 중심의 모형인 점은 허접하고 부끄러운 것은 아닐까. 자료실의 경우, 필요한 자료를 문의하였더니, 제대로 된 검색방법도 없고, 담당 직원이 손으로 저기 뒤에 있다는 안내방식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가. 구내식당에서 직원들 식사시간이라며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일반인 통제를 하는 것은 무슨 특권적인 작태인가, 일반인들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특별한 무엇을 직원들에게만 제공하려고 1시간씩이나 일반인들과 섞이지 못하게 제한하는가. 11시 30분부터 1시간동안 통째로 구내식당에서 널널하게 식사하고 나서, 1시를 넘기면서까지 카페에서 담소나누는 직원을 보면서, 역사박물관의 빈약한 콘텐츠와 관객의 편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노력하는 공직자 모습은 전혀 없고,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으로 운영을 하면서도 뻔뻔한 전근대적 공직자의 작태, 일반인과 어울리면서 차별화되는 운영의 모습이 없이 특권적 우월감을 누리려는 그 모습에서 느끼는 창피함은 과민한 반응일까. 공공공간과 공직자가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는 모습을 보며 다음 세대는 무엇을 배울까 염려스러웠다.
둘째, 조악(粗惡)하다는 것이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경우, 건설회사의 이익이 되는 용적율을 높여주는 인센티브로 구성한 공간이라 그런지, 한마디로 얼렁뚱땅 만들어 놓은 싸구려 전시물같다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과연 1인당 소득 3만불에 이르는 OECD 국가의 수도이며, 세계적인 도시인 서울에서 내세우는 박물관 마을로서 적절한 수준인가. 공간구성의 테마도 없고, 전체적이며 장기적인 계획도 없이 임시방편적인 졸속행정으로 이루어진 영혼없는 도시공간이라면 지나친 비판일까. 인간은 기억하는 감정이 많으면 인생은 풍요로워진다고 하는데, 정도 600년의 서울에 관한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박물관 마을이라고 말하기에는 콘텐츠는 물론 기본적인 공간개념조차 모호한 잡동사니 같은 느낌은 아닐까. 장소를 나타내는 문화적 테마를 정하고 이와 관련된 시설들을 정돈하여, 공간을 해석하는 정보의 풍요로움이 다채롭게 표현되는 해외 박물관 마을처럼 구성할 수는 없었을까. 여러가지 의문투성이로서, 박물관 마을은 한마디로 조악하였다.
셋째는, 잔잔한 감동이었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과 영상자료를 통하여 새롭게 인식된 윤동주 문학은 그야말로 하나의 감동이었다. 소중했던 귀한 영혼이 우리 현대사에 존재하였고, 그 분이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는 것은 분명 우리 현대사의 자랑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부암동 백사실 계곡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아름다운 숲과 생태적으로 잘 보전된 숲은 자본에 찌들인 서울 도시공간에서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길이 보전해야할 장소로 사료되었다.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는 긴 강의이지만, 세심하게 강의준비를 하였고, 더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해설과 소통을 위하여 애써주었으며, 수강생들과 소통하며, 길 위에서 쉬는 시간에 많은 시를 낭송하여준 김 성주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작가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예쁜 떡, 다양한 과자 등의 간식, 그리고 음료수까지 세심하게 준비하였고, 탐방 행렬의 맨 뒤에서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탕방객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주셨으며, 무엇보다 길 위의 인문학다운 소중한 탐방 기회를 기획하고 운영하여주신 일월도서관 관계자 여러분들께, 그리고 길 위의 인문학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과거부터 경험하여 왔던 우리 도시들의 변화는, 이제 새로운 개념으로 탈바꿈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즉, 과거와 같이 단순하게 도시 공간수요와 이에 대응하는 집장사같은 싸구려 건축 기술에서 벗어나,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상생의 공간 개념과 새로운 도시문화에 입각하여 보다 세련된 도시공간으로 변화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모티브는 도시공간의 인문학적 접근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판단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6월 27일 시행된, 수원 일월도서관 2019년 길 위의 인문학 탐방은 의미있는 행사로 사료된다. 탐방장소는 서울 역사박물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윤동주 문학관, 백사실 계곡 등으로서, 전체적으로 시(詩)로 시작하여 시(詩)로 끝난 감성 충만한, 문자 그대로 길 위의 인문학다운 탐방이었다.
수원 일월도서관의 길 위의 인문학 탐방에 대한 감상은 크게 다음 3가지로 요약되었다.
첫째는 창피하다는 것이었다. 서울은 우리나라의 수도이며, 역사와 문화의 폭, 그리고 깊이에 있어서, 세계의 어느 대도시에 비하여 뒤떨어지거나 열등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궁궐인 경희궁을 제대로 복원한 것도 아니고, 그 궁궐부지에 역사박물관과 경찰박물관 등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 것일까. 또한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모형이 자신의 건물만 예쁘게 표현한 건설회사 홍보용 모형을 그대로 전시한 것, 모형 또한 서울전체가 아닌 강북 중심의 모형인 점은 허접하고 부끄러운 것은 아닐까. 자료실의 경우, 필요한 자료를 문의하였더니, 제대로 된 검색방법도 없고, 담당 직원이 손으로 저기 뒤에 있다는 안내방식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가. 구내식당에서 직원들 식사시간이라며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일반인 통제를 하는 것은 무슨 특권적인 작태인가, 일반인들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특별한 무엇을 직원들에게만 제공하려고 1시간씩이나 일반인들과 섞이지 못하게 제한하는가. 11시 30분부터 1시간동안 통째로 구내식당에서 널널하게 식사하고 나서, 1시를 넘기면서까지 카페에서 담소나누는 직원을 보면서, 역사박물관의 빈약한 콘텐츠와 관객의 편의에 대하여 고민하고 노력하는 공직자 모습은 전혀 없고,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으로 운영을 하면서도 뻔뻔한 전근대적 공직자의 작태, 일반인과 어울리면서 차별화되는 운영의 모습이 없이 특권적 우월감을 누리려는 그 모습에서 느끼는 창피함은 과민한 반응일까. 공공공간과 공직자가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는 모습을 보며 다음 세대는 무엇을 배울까 염려스러웠다.
둘째, 조악(粗惡)하다는 것이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경우, 건설회사의 이익이 되는 용적율을 높여주는 인센티브로 구성한 공간이라 그런지, 한마디로 얼렁뚱땅 만들어 놓은 싸구려 전시물같다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과연 1인당 소득 3만불에 이르는 OECD 국가의 수도이며, 세계적인 도시인 서울에서 내세우는 박물관 마을로서 적절한 수준인가. 공간구성의 테마도 없고, 전체적이며 장기적인 계획도 없이 임시방편적인 졸속행정으로 이루어진 영혼없는 도시공간이라면 지나친 비판일까. 인간은 기억하는 감정이 많으면 인생은 풍요로워진다고 하는데, 정도 600년의 서울에 관한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박물관 마을이라고 말하기에는 콘텐츠는 물론 기본적인 공간개념조차 모호한 잡동사니 같은 느낌은 아닐까. 장소를 나타내는 문화적 테마를 정하고 이와 관련된 시설들을 정돈하여, 공간을 해석하는 정보의 풍요로움이 다채롭게 표현되는 해외 박물관 마을처럼 구성할 수는 없었을까. 여러가지 의문투성이로서, 박물관 마을은 한마디로 조악하였다.
셋째는, 잔잔한 감동이었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과 영상자료를 통하여 새롭게 인식된 윤동주 문학은 그야말로 하나의 감동이었다. 소중했던 귀한 영혼이 우리 현대사에 존재하였고, 그 분이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는 것은 분명 우리 현대사의 자랑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부암동 백사실 계곡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아름다운 숲과 생태적으로 잘 보전된 숲은 자본에 찌들인 서울 도시공간에서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길이 보전해야할 장소로 사료되었다.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는 긴 강의이지만, 세심하게 강의준비를 하였고, 더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해설과 소통을 위하여 애써주었으며, 수강생들과 소통하며, 길 위에서 쉬는 시간에 많은 시를 낭송하여준 김 성주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작가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예쁜 떡, 다양한 과자 등의 간식, 그리고 음료수까지 세심하게 준비하였고, 탐방 행렬의 맨 뒤에서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탕방객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주셨으며, 무엇보다 길 위의 인문학다운 소중한 탐방 기회를 기획하고 운영하여주신 일월도서관 관계자 여러분들께, 그리고 길 위의 인문학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첨부파일
관련링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