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눈,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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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19-06-15 17:02 조회280회 2019.06.15본문
< 내가 있는 자리 이 몸, 이 마음 >
“위대한 존재를 믿는데 왜 나는 위대해 지지 않는가?”
고뇌하는 철학자 스피노자는 종교를 버리는 대가로 철학 하는 삶을 갖게 되었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부와 명예를 버리면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은 철학이었다.
대중은 아는 것을 귀찮아 하고 복잡하게 여긴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그러나 21세기 시민들은 사유하는 삶을 찾고자' 길 위의 인문학'에 노크를 했다.
'북수원 도서관'에서 함께 모였다.
그곳에 나도 함께 했다.
상식은 늘 하던 방식이고 철학은 그것을 멈추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자신의 신념을 멈춘 것처럼 철학은 상식에 물음을 갖는 활동이다.
2019년 5월 북수원 도서관에서는 그 첫번째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의 마음과 몸에 관한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첫 수업으로 채운 선생님께서 오셨다.
강의는 명불허전이다. 알찬 내용과 차분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강의를 진행해 주셨다.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생각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다.
생각 하면 할수록 속상한 일들이 있다. 가끔 그 생각을 확대 해석해서 자신을 계속 괴롭히기도 한다. 이때 강사님께서는 생각보다 몸을 이해 하라고 하셨다. 마음으로는 몸을 어찌 할 수 없기에 내 몸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는 것은 나의 세포들과 내가 사는 시대, 내가 만나는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체가 있는 나의 몸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관계 맺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언뜻 몸과 마음을 따로 구분하는 내용 같았으나 인간의 육체로 정신을 이끌라는 흥미 있는 관점이었다. 마음이 복잡 할 때에는 몸을 움직여서 다른 관계를 맺는 것도 새로운 돌파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몸을 도서관으로 이동시켜 철학에 접목한 미술 강의와 인문학에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
몸을 대하는 시선의 차이도 흥미로웠다.
르네상스 무렵 이후 서양에서는 누드 그림이 많았다. 최초의 인간 육체를 아름답게 여긴 화가들은 아담과 이브를 모티브로 한 젊고 건강한 누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램브란트의 아담과 이브는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그는 나이든 인간이 더 완벽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이 든 완벽한 몸을 가진 아담과 이브를 그린 것이다. 또한 남성 화가와 여성 화가는 각각 여성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남성작가에게 여성 그림은 지극히 아름다운 관찰 대상이지만 여성작가의 여성 인물은 사실적인 대상이었다. 이처럼 작품도 그 시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서, 계급에 따라서 몸에 대한 해석들이 다양하다. 시선의 차이를 배우고 미술 작품을 접하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다.
자연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존재만으로 완벽한 것이다.
거미는 눈, 코, 입이 없지만 온 몸이 감각기관이라고 한다. 우리는 인간의 가치를 절대 기준으로 삼고 나머지를 하등 하게 여긴다. 인간과 다른 모습이라고 열등한 것은 아니다. 거미는 인간의 감각 이상의 능력이 있다. 또한 진드기는 햇빛, 털, 피를 가진 동물에게만 반응을 하는 곤충이다. 세가지의 자극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생물이다. 이 작은 곤충에게도 기다림의 지혜가 있음을 말 해 주셨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그 방식대로 완전하다. 완벽한 조건이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우리 사회의 편협한 시선들도 깨져야 할 것이다. 종교, 인종, 가난, 장애 등 모든 부분들이 그대로 가치가 있음을.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늘 부족한 점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때론 야단을 친다. 이런 내 모습을 반성했다. “oo아, 너는 존재만으로도 완벽하구나.” 위로를 받는 시간이었다.
사유하는 삶은 즐겁다.
철학은 위대한 사람들의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40대 주부도 충분히 이해하고 삶에 접목시킬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인문학 강의 덕분에 가족을 더 이해하고 주변을 관찰하게 되고 나와 관계된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앎을 즐기는 시민을 위한 "길 위에 인문학"이 계속되어 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열과 성을 다해 수강생을 지원해 주시는 북수원 도서관 관계자님께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담당 사서 선생님의 문자 메시지는 나의 발길을 도서관으로 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따뜻하고 의미있는 문장의 메시지가 늘 고맙다.
“위대한 존재를 믿는데 왜 나는 위대해 지지 않는가?”
고뇌하는 철학자 스피노자는 종교를 버리는 대가로 철학 하는 삶을 갖게 되었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부와 명예를 버리면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은 철학이었다.
대중은 아는 것을 귀찮아 하고 복잡하게 여긴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그러나 21세기 시민들은 사유하는 삶을 찾고자' 길 위의 인문학'에 노크를 했다.
'북수원 도서관'에서 함께 모였다.
그곳에 나도 함께 했다.
상식은 늘 하던 방식이고 철학은 그것을 멈추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자신의 신념을 멈춘 것처럼 철학은 상식에 물음을 갖는 활동이다.
2019년 5월 북수원 도서관에서는 그 첫번째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의 마음과 몸에 관한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첫 수업으로 채운 선생님께서 오셨다.
강의는 명불허전이다. 알찬 내용과 차분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강의를 진행해 주셨다.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생각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다.
생각 하면 할수록 속상한 일들이 있다. 가끔 그 생각을 확대 해석해서 자신을 계속 괴롭히기도 한다. 이때 강사님께서는 생각보다 몸을 이해 하라고 하셨다. 마음으로는 몸을 어찌 할 수 없기에 내 몸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는 것은 나의 세포들과 내가 사는 시대, 내가 만나는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체가 있는 나의 몸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관계 맺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언뜻 몸과 마음을 따로 구분하는 내용 같았으나 인간의 육체로 정신을 이끌라는 흥미 있는 관점이었다. 마음이 복잡 할 때에는 몸을 움직여서 다른 관계를 맺는 것도 새로운 돌파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몸을 도서관으로 이동시켜 철학에 접목한 미술 강의와 인문학에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
몸을 대하는 시선의 차이도 흥미로웠다.
르네상스 무렵 이후 서양에서는 누드 그림이 많았다. 최초의 인간 육체를 아름답게 여긴 화가들은 아담과 이브를 모티브로 한 젊고 건강한 누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램브란트의 아담과 이브는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그는 나이든 인간이 더 완벽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이 든 완벽한 몸을 가진 아담과 이브를 그린 것이다. 또한 남성 화가와 여성 화가는 각각 여성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남성작가에게 여성 그림은 지극히 아름다운 관찰 대상이지만 여성작가의 여성 인물은 사실적인 대상이었다. 이처럼 작품도 그 시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서, 계급에 따라서 몸에 대한 해석들이 다양하다. 시선의 차이를 배우고 미술 작품을 접하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다.
자연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존재만으로 완벽한 것이다.
거미는 눈, 코, 입이 없지만 온 몸이 감각기관이라고 한다. 우리는 인간의 가치를 절대 기준으로 삼고 나머지를 하등 하게 여긴다. 인간과 다른 모습이라고 열등한 것은 아니다. 거미는 인간의 감각 이상의 능력이 있다. 또한 진드기는 햇빛, 털, 피를 가진 동물에게만 반응을 하는 곤충이다. 세가지의 자극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생물이다. 이 작은 곤충에게도 기다림의 지혜가 있음을 말 해 주셨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그 방식대로 완전하다. 완벽한 조건이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우리 사회의 편협한 시선들도 깨져야 할 것이다. 종교, 인종, 가난, 장애 등 모든 부분들이 그대로 가치가 있음을.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늘 부족한 점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때론 야단을 친다. 이런 내 모습을 반성했다. “oo아, 너는 존재만으로도 완벽하구나.” 위로를 받는 시간이었다.
사유하는 삶은 즐겁다.
철학은 위대한 사람들의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40대 주부도 충분히 이해하고 삶에 접목시킬 수 있는 대상이었다. 인문학 강의 덕분에 가족을 더 이해하고 주변을 관찰하게 되고 나와 관계된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앎을 즐기는 시민을 위한 "길 위에 인문학"이 계속되어 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열과 성을 다해 수강생을 지원해 주시는 북수원 도서관 관계자님께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담당 사서 선생님의 문자 메시지는 나의 발길을 도서관으로 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따뜻하고 의미있는 문장의 메시지가 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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