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명문사학 서원, 유네스코에 도전하다!] 2차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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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도서관 19-05-31 16:46 조회334회 2019.05.31본문
돈암서원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다. 기호사림에 대표서원이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때마침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참여하게 돼 내심 기뻤다. 또 다른 이유는 김장생의 본이 광산(光山)인데 나의 본이기도 했다. 그래서 직계조상까진 아니더라도 조상님을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 논산으로 달렸다. 2시간여를 달린 끝에 도착한 돈암서원은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질 그리고 송준길과 서인의 거두 송시열을 모신 서원이다. 1881년(고종 18)에 홍수 때마다 서원 뜰 앞까지 물이 차올라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 산의 나무를 무분별하게 벤 끝에 피해가 서원까지 생긴 것으로 보였다.
눈에 띠는 것은 응도당(凝道堂) 이다. 보물1569호인 응도당(凝道堂)은 학문을 갈고 닦던 강당으로 서원 옛터에 남아있던 것을 1971년 지금의 곳으로 이전한 곳이다. 건물구조도 그렇고 고풍스런 모습이 멋졌다. 바로 그곳에서 교수님을 초빙 강연을 들었다. 서원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사상적 메시지까지 들려주었는데 유익했다.
다음은 종학당(宗學堂)으로 파평 윤씨 종가서 세운 교육기관이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국가서 관리하는 향교와 위대한 선비에 신위를 모신 서원 그리고 종가에서 세운 학당으로 나뉜다. 종학당은 그런 종가서 세운 대표적인 학당이다. 충청도 명문가문으로 파평윤씨가 된 과정을 비하인드 스토리를 흥미롭게 들었다. 무엇보다 학당을 둘러싼 풍경들이 기막혔다. 노성산자락 옥녀봉 기슭에 자리 잡은 고택으로 조선 후기 양반 가정집의 표본이 되는 주택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정수루였다. 적당한 높이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그림 같았다. 천년고목으로 지은 듯한 정수루에 앉아 있노라니 절로 휠링이 되는 듯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기만 하라는 강사의 제안에 몸을 맡기자 묵은 마음의 때가 씻기는 듯 했다. 처음으로 바람소리를 들었고 햇살마저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깨가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져 힐링을 제대로 했다.
마지막으로 노강서원을 찾았다. 작고 아담했는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보물증서가 천장에 외롭게 보이지만 대청마루에 앉아 듣는 강연은 좋았다. 성리학에 기반을 둔 당대의 유학자들에 삶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지금의 시선으로 본 냉정한 평가를 교수님은 흥미롭게 설명해주셨다. 개인적으론 서원에서 했던 민간 구휼사업과 덕을 베푼다는 내용이 좋았다.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던 백성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그들을 교화하려 애썼던 서원의 모습이 지금의 교육기관하곤 너무도 비교돼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서원의 가치가 오늘 날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거 같았다.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려면 보편적 가치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한다. 우리 조선의 서원이 바로 그런 점과 부합돼 문화재 지정이 확실시 된다고 한다. 그와 때맞춰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거 같아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해보였다. 개인적으론 역사탐방에 참여함으로써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보고 누렸다는 점에서 크나큰 행운이었다.
눈에 띠는 것은 응도당(凝道堂) 이다. 보물1569호인 응도당(凝道堂)은 학문을 갈고 닦던 강당으로 서원 옛터에 남아있던 것을 1971년 지금의 곳으로 이전한 곳이다. 건물구조도 그렇고 고풍스런 모습이 멋졌다. 바로 그곳에서 교수님을 초빙 강연을 들었다. 서원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사상적 메시지까지 들려주었는데 유익했다.
다음은 종학당(宗學堂)으로 파평 윤씨 종가서 세운 교육기관이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국가서 관리하는 향교와 위대한 선비에 신위를 모신 서원 그리고 종가에서 세운 학당으로 나뉜다. 종학당은 그런 종가서 세운 대표적인 학당이다. 충청도 명문가문으로 파평윤씨가 된 과정을 비하인드 스토리를 흥미롭게 들었다. 무엇보다 학당을 둘러싼 풍경들이 기막혔다. 노성산자락 옥녀봉 기슭에 자리 잡은 고택으로 조선 후기 양반 가정집의 표본이 되는 주택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정수루였다. 적당한 높이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그림 같았다. 천년고목으로 지은 듯한 정수루에 앉아 있노라니 절로 휠링이 되는 듯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기만 하라는 강사의 제안에 몸을 맡기자 묵은 마음의 때가 씻기는 듯 했다. 처음으로 바람소리를 들었고 햇살마저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깨가 가벼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져 힐링을 제대로 했다.
마지막으로 노강서원을 찾았다. 작고 아담했는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보물증서가 천장에 외롭게 보이지만 대청마루에 앉아 듣는 강연은 좋았다. 성리학에 기반을 둔 당대의 유학자들에 삶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지금의 시선으로 본 냉정한 평가를 교수님은 흥미롭게 설명해주셨다. 개인적으론 서원에서 했던 민간 구휼사업과 덕을 베푼다는 내용이 좋았다.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던 백성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그들을 교화하려 애썼던 서원의 모습이 지금의 교육기관하곤 너무도 비교돼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서원의 가치가 오늘 날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거 같았다.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려면 보편적 가치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한다. 우리 조선의 서원이 바로 그런 점과 부합돼 문화재 지정이 확실시 된다고 한다. 그와 때맞춰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거 같아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해보였다. 개인적으론 역사탐방에 참여함으로써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보고 누렸다는 점에서 크나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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