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3차 여주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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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분당도서관 18-07-24 10:18 조회305회 2018.07.24본문
여주 역사탐방 – 명성황후기념관, 세종대왕릉, 신륵사
경기도 여주지역 역사탐방을 다녀 왔습니다. 탐방지는 명성황후(생가)기념관, 세종대왕릉, 신륵사로서 시간을 내어 다녀올 만한 역사탐방지였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릉이 새로이 복원 공사로 인해 세종대왕역사문화관만 관람하게 되어 아쉽기도 하였습니다.
당일 역사탐방지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부터 동아역사연구소 소장이시면서 국제한국사학회 회장이신 이민원 교수님의 해박한 지식과 유머가 섞인 소개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하루였습니다. 명성황후기념관을 관람해 보니 새삼 구한말의 역사가 드라마처럼 머리 속에 그려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비극적인 구한말의 역사에 가슴 속 깊이 통탄해 마지 않습니다. 조선조 순조 대 이후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인해 나라 정치가 구한말까지 줄곧 어지러웠으며 국가 기강이 그야말로 무저져 내린 것을 역사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국가가 강해야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것인데 국가 방비가 무방비는 물론 무능한 정부 내지 무능한 국가로 인해 일본에 강탈 당하는 수모를 겪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1894년에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혼란 속에서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1년 동안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일으켰고 말 그대로 풍전등화 같은 세파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일본에 조선이 강점 당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경내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 감고당을 둘러보았습니다. 원래 서울 안국동 덕성여자고등학교 부지에 있었는 데 여주시에서 이 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감고당은 오래 전 조선조 숙종 때 왕비인 인현왕후 민씨가 거처하던 생가였다고 하는 것을 새삼 들었습니다. 아마 명성황후도 어릴 적 인현왕후를 생각하면서 자신도 왕비가 될 수도 있음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을 것으로 생가된다는 이민원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동감이 같습니다. 그리고 경내에 소원바위라든가 민씨 6대조의 묘 등도 관람해 보는 등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성군이신 제4대 세종대왕릉을 보고자 갔으나 공교롭게도 복원 공사로 인해 왕릉을 못 보게 되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입구에 있는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을 관람하였습니다. 문화관의 시설이 매우 잘 되어 있어 관람이 매우 유익하였습니다. 여러 유물은 물론 승하하신 왕의 왕릉 재연 모습을 시뮬레이션으로 잘 보았습니다. 여기서 새삼스러운 것이 세종대왕의 왕릉인 영릉(英陵)은 소헌왕후와 합장이 되어 있는 데 조금 떨어져 조성되어 있는 조선조 제14대왕 효종대왕의 왕릉인 영릉(寧陵)은 왕과 인선왕후가 위 아래로 떨어져 묘가 조성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가지는 문화관 내에 설치되어 있는 ‘신들의 정원’ 왕릉 배치도와 관련해 건의를 합니다. 배치도에 보면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 등 복수의 능에 대해 화살표 표시를 하고 묘장된 왕이나 왕비 등을 기재해 줬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는 관람객 한 분이 인솔하신 이민원 교수님께 건의한 것입니다. 오늘은 복원 공사로 인해 세종대왕릉을 못 보아 아쉽지만 다시 시간 내어 와서 봐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봉미산 신륵사를 관람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보물이 7개가 있어 이들 보물 모두를 관람해 보고 관찰해 보았습니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고 하는 데 정확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 세워진 석탑이 훼손되어 조선조 영조 때 보수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은 불교를 배척하고 유학을 숭상했음에도 유구한 문화재에 대한 사랑은 지금이나 같았나 보여져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보물인 석종, 석등을 보면서 조선 개국에 헌신한 무학대사가 다녀가면서 보았다고 하니 새삼 그 시절 무학대사의 심정을 헤아려 보기도 했습니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이민원 교수님의 재미있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 중에 조선조 효종 시대 표류하다 제주도에 도착한 하멜이 현종 시대 탈출하여 하멜표류기를 썼는 데 그 쓴 목적이 밀린 봉급을 받기 위한 것이라 하여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돌아 오는 길 버스 안에서 오늘 일과를 잘 정리해 설명해 주어 오늘의 역사탐방을 다시 스크린 해 보는 좋은 시간을 갖는 등 매우 유익한 하루였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역사탐방은 그 동안 몰랐던 역사에 대해 새로이 깨우치게 된 하루가 되어 매우 값진 기회가 되었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2018. 7. 11.
여주지역 역사탐방 참여자 신 승 철
경기도 여주지역 역사탐방을 다녀 왔습니다. 탐방지는 명성황후(생가)기념관, 세종대왕릉, 신륵사로서 시간을 내어 다녀올 만한 역사탐방지였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릉이 새로이 복원 공사로 인해 세종대왕역사문화관만 관람하게 되어 아쉽기도 하였습니다.
당일 역사탐방지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부터 동아역사연구소 소장이시면서 국제한국사학회 회장이신 이민원 교수님의 해박한 지식과 유머가 섞인 소개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하루였습니다. 명성황후기념관을 관람해 보니 새삼 구한말의 역사가 드라마처럼 머리 속에 그려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비극적인 구한말의 역사에 가슴 속 깊이 통탄해 마지 않습니다. 조선조 순조 대 이후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인해 나라 정치가 구한말까지 줄곧 어지러웠으며 국가 기강이 그야말로 무저져 내린 것을 역사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국가가 강해야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것인데 국가 방비가 무방비는 물론 무능한 정부 내지 무능한 국가로 인해 일본에 강탈 당하는 수모를 겪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1894년에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혼란 속에서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1년 동안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일으켰고 말 그대로 풍전등화 같은 세파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일본에 조선이 강점 당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경내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 감고당을 둘러보았습니다. 원래 서울 안국동 덕성여자고등학교 부지에 있었는 데 여주시에서 이 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감고당은 오래 전 조선조 숙종 때 왕비인 인현왕후 민씨가 거처하던 생가였다고 하는 것을 새삼 들었습니다. 아마 명성황후도 어릴 적 인현왕후를 생각하면서 자신도 왕비가 될 수도 있음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을 것으로 생가된다는 이민원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동감이 같습니다. 그리고 경내에 소원바위라든가 민씨 6대조의 묘 등도 관람해 보는 등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성군이신 제4대 세종대왕릉을 보고자 갔으나 공교롭게도 복원 공사로 인해 왕릉을 못 보게 되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입구에 있는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을 관람하였습니다. 문화관의 시설이 매우 잘 되어 있어 관람이 매우 유익하였습니다. 여러 유물은 물론 승하하신 왕의 왕릉 재연 모습을 시뮬레이션으로 잘 보았습니다. 여기서 새삼스러운 것이 세종대왕의 왕릉인 영릉(英陵)은 소헌왕후와 합장이 되어 있는 데 조금 떨어져 조성되어 있는 조선조 제14대왕 효종대왕의 왕릉인 영릉(寧陵)은 왕과 인선왕후가 위 아래로 떨어져 묘가 조성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가지는 문화관 내에 설치되어 있는 ‘신들의 정원’ 왕릉 배치도와 관련해 건의를 합니다. 배치도에 보면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 등 복수의 능에 대해 화살표 표시를 하고 묘장된 왕이나 왕비 등을 기재해 줬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는 관람객 한 분이 인솔하신 이민원 교수님께 건의한 것입니다. 오늘은 복원 공사로 인해 세종대왕릉을 못 보아 아쉽지만 다시 시간 내어 와서 봐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봉미산 신륵사를 관람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보물이 7개가 있어 이들 보물 모두를 관람해 보고 관찰해 보았습니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고 하는 데 정확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 세워진 석탑이 훼손되어 조선조 영조 때 보수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은 불교를 배척하고 유학을 숭상했음에도 유구한 문화재에 대한 사랑은 지금이나 같았나 보여져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보물인 석종, 석등을 보면서 조선 개국에 헌신한 무학대사가 다녀가면서 보았다고 하니 새삼 그 시절 무학대사의 심정을 헤아려 보기도 했습니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이민원 교수님의 재미있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 중에 조선조 효종 시대 표류하다 제주도에 도착한 하멜이 현종 시대 탈출하여 하멜표류기를 썼는 데 그 쓴 목적이 밀린 봉급을 받기 위한 것이라 하여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돌아 오는 길 버스 안에서 오늘 일과를 잘 정리해 설명해 주어 오늘의 역사탐방을 다시 스크린 해 보는 좋은 시간을 갖는 등 매우 유익한 하루였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역사탐방은 그 동안 몰랐던 역사에 대해 새로이 깨우치게 된 하루가 되어 매우 값진 기회가 되었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2018. 7. 11.
여주지역 역사탐방 참여자 신 승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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