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용인지역 탐방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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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분당도서관 18-07-24 10:15 조회359회 2018.07.24본문
길위의 인문학 용인지역 탐방 후기
작년에 이어 성남시 분당도서관에서 실시하는 “2018 길위의 인문학”프로그램에 참여하여 6월 27일(수요일) 용인시 지역에 있는 조선 후기 태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사주당 이씨묘, 국어학의 개척자로 알려진 사주당의 아들 유희 선생의 묘를 오전에 참배하고 외국어대학교 용인 캠퍼스에서 중식과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는 왕산리 지석묘를 거쳐 포은 정몽주선생의 묘역, 정암 조광조 선생을 배향한 심곡서원과 그의 묘역을 탐방하였다.
당일 날씨는 무더웠고 포기한 일부 신청자가 있었지만 탐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탐방은 버스내에서 관계자의 일정설명과 함께 시작되었고 아침을 거른 분들에게는 유용한 간식(떡)과 물이 제공되어 모두들에게 기분 좋은 출발이 된 것 같았다.
처음 도착한 사주당 이씨 묘역으로 가는 길은 용인시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둘레길 조성의 일환으로 “태교로”라는 길 이름을 짓고 정비중이라 다소 쉽게 오를 수 있었지만 “태교신기” 저자의 묘소로는 관리가 부실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은 없었다.
그러나 강의실에서 배운 바로는 부인은 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덕행과 총명함을 겸비하여 주변의 칭송이 자자했으며 목천현감을 지낸 유한규와 결혼하여 1남 3녀의 자녀를 낳아 길렀다는 부인의 학식과 자녀사랑의 결과물로 태어난 저작물이 “태교신기”임을 알게 되었고 “사주당(師朱堂)”이란 당호를 통하여 자신 스스로 주자와 같은 대학자를 꿈구었던 원대한 정신세계로 전통시대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학문을 추구하고 남편과 주자학을 토론하는 여성상을 통해 “걸크러쉬”라는 뜻에 부합되는 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찾아 본 우리나라 국어학의 개척자이자 사주당 이씨의 아들인 유희 선생의 묘소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사탕 한 알을 상석에 놓고 예를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오면서 단체로 약소한 제물이나마 영전에 올리는 것도 괜찮치 않나 생각이 든다. 사실 유희 선생에 대해서는 이번 강의에서 처음으로 접할 정도도 알려지지 않은 학자분이지만 이러분들의 노력과 결과가 있어 우리의 말과 글이 다듬어졌다고 느끼면서 그의 어머니 묘소와 함께 관리가 다소 부실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오늘의 일정상에 위치한 왕산리 지석묘를 둘러보면서 이지역에서 인류가 거주한 역사가 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용인지역이 선사 이전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땅임을 알게되었다.
이후, 도착한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역을 둘러보았는데 선생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 있어 다시 논할 필요는 없겠지만 후손들이 묘역이 너무 과하게 조성한 것 같아 선생의 평소 그릇을 훼손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이어서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비운의 개혁가인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심곡서원을 둘러보았다. 본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남은 서원 중의 하나로 처음에는 재향 기능을 강조하여 설립되었으나 이후 강당을 두고 뒤편에 재사를 두는 전당후재의 모습을 보이며 사당에는 정암 조광조와 그를 위해 여러차례 상소를 올린 문신인 학포 양팽손의 위폐가 봉안되어 있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올린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심곡서원 부근이지만 이제는 도시의 개발(?)로 아파트에 둘러싸인 조광조선생의 묘역을 둘러보면서 예를 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인문학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이번과 같이 시의적절한 주제, “21세기 조선의 걸크러쉬를 만나다”를 선정하여 관련강좌과 탐방을 연계한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제공하여 일반시민들의 교양을 제고하고 같은 취향을 가진 분들과의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분당도서관과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내년에도 더 좋은 프로그램을 기대하면서 탐방 후기를 마칩니다. 끝.
2차 탐방자 이 재 용
작년에 이어 성남시 분당도서관에서 실시하는 “2018 길위의 인문학”프로그램에 참여하여 6월 27일(수요일) 용인시 지역에 있는 조선 후기 태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사주당 이씨묘, 국어학의 개척자로 알려진 사주당의 아들 유희 선생의 묘를 오전에 참배하고 외국어대학교 용인 캠퍼스에서 중식과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는 왕산리 지석묘를 거쳐 포은 정몽주선생의 묘역, 정암 조광조 선생을 배향한 심곡서원과 그의 묘역을 탐방하였다.
당일 날씨는 무더웠고 포기한 일부 신청자가 있었지만 탐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탐방은 버스내에서 관계자의 일정설명과 함께 시작되었고 아침을 거른 분들에게는 유용한 간식(떡)과 물이 제공되어 모두들에게 기분 좋은 출발이 된 것 같았다.
처음 도착한 사주당 이씨 묘역으로 가는 길은 용인시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둘레길 조성의 일환으로 “태교로”라는 길 이름을 짓고 정비중이라 다소 쉽게 오를 수 있었지만 “태교신기” 저자의 묘소로는 관리가 부실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은 없었다.
그러나 강의실에서 배운 바로는 부인은 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덕행과 총명함을 겸비하여 주변의 칭송이 자자했으며 목천현감을 지낸 유한규와 결혼하여 1남 3녀의 자녀를 낳아 길렀다는 부인의 학식과 자녀사랑의 결과물로 태어난 저작물이 “태교신기”임을 알게 되었고 “사주당(師朱堂)”이란 당호를 통하여 자신 스스로 주자와 같은 대학자를 꿈구었던 원대한 정신세계로 전통시대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학문을 추구하고 남편과 주자학을 토론하는 여성상을 통해 “걸크러쉬”라는 뜻에 부합되는 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찾아 본 우리나라 국어학의 개척자이자 사주당 이씨의 아들인 유희 선생의 묘소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사탕 한 알을 상석에 놓고 예를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오면서 단체로 약소한 제물이나마 영전에 올리는 것도 괜찮치 않나 생각이 든다. 사실 유희 선생에 대해서는 이번 강의에서 처음으로 접할 정도도 알려지지 않은 학자분이지만 이러분들의 노력과 결과가 있어 우리의 말과 글이 다듬어졌다고 느끼면서 그의 어머니 묘소와 함께 관리가 다소 부실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오늘의 일정상에 위치한 왕산리 지석묘를 둘러보면서 이지역에서 인류가 거주한 역사가 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용인지역이 선사 이전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땅임을 알게되었다.
이후, 도착한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역을 둘러보았는데 선생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 있어 다시 논할 필요는 없겠지만 후손들이 묘역이 너무 과하게 조성한 것 같아 선생의 평소 그릇을 훼손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이어서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비운의 개혁가인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심곡서원을 둘러보았다. 본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남은 서원 중의 하나로 처음에는 재향 기능을 강조하여 설립되었으나 이후 강당을 두고 뒤편에 재사를 두는 전당후재의 모습을 보이며 사당에는 정암 조광조와 그를 위해 여러차례 상소를 올린 문신인 학포 양팽손의 위폐가 봉안되어 있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올린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심곡서원 부근이지만 이제는 도시의 개발(?)로 아파트에 둘러싸인 조광조선생의 묘역을 둘러보면서 예를 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인문학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이번과 같이 시의적절한 주제, “21세기 조선의 걸크러쉬를 만나다”를 선정하여 관련강좌과 탐방을 연계한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제공하여 일반시민들의 교양을 제고하고 같은 취향을 가진 분들과의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분당도서관과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내년에도 더 좋은 프로그램을 기대하면서 탐방 후기를 마칩니다. 끝.
2차 탐방자 이 재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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