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미소, 패자의 눈물 –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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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우 15-11-23 08:27 조회999회 2015.11.23본문
최 종 우
우」26425. 강원도 원주시 천사로 130번지 102동 303호
원주시립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테마는 "인문적 상상력 사고의 텃밭을 일구다"였다. 금요일에 특강을 듣고 나면, 다음 날 토요일엔 답사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을 갖는 행사였다. 덕분에 나는 강의를 들을 때는 귀가 즐겁고, 탐방을 할 때는 눈이 즐거운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정말 즐겁고 알찬 시간들이었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선착순으로 접수해서 꼭 참석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 곁에 있는 낯모르는 사람들도 정겨운데, 이번엔 아들 내외가 함께 한 탐방이라 너무 좋았기에 그 날을 가끔 떠올리며 행복해 한다.
-승자의 미소, 패자의 눈물?이 테마였다. 이 제목에 해당하는 역사적 장소는 문막이고, 이곳은 원주에서 지척에 있다. 무심히 지나쳤던 이곳에서 후삼국의 견훤과 왕건의 싸움이 있었고, 이긴 왕건에 의해 고려가 태동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의 산실이라는 점이 마냥 신기하다.
문막 건등리의 건등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왕건이 올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견훤이 웅거하고 있던 견훤산성은 문막 평야를 가운데로 마주 건너다보이는 비봉산에 있었다고 한다. 손곡 이달이 쓴 왕건의 전적비 앞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바라보니, "승자의 웃음, 패자의 눈물"이라는 명제가 한 눈에 압축되어 들어온다. 이 너른 벌판의 주인이 되는 자가 한 나라의 주인이 됨은 당연하겠다 싶었다. 이긴 왕건은 승자의 미소를, 전투에서 진 견훤은 패자의 눈물을 흘렸던 문막. 이곳에서 운명의 갈림길에 선, 오래전 옛이야기속의 두 사내를 생각해 보았다. 둘 다 사내 중의 사내였을 터인데 한쪽은 시원하고 통쾌한 웃음을 날렸을 것이고, 한 쪽은 원통해 하며 회한의 눈물을 꺼이꺼이 한 없이 울어 댔었을 터이나 하늘이 마련해 준 운명 앞에서는 그 누군들 어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벽계수 도정 이종숙 묘역을 들러 조선의 명기였던 '황진이'와의 일화를 소개 받았다. 황진이를 소재로 얼마나 많은 드라마나 소설이 만들어지는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 바로 내 고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냥 현실감 없이 막연히 재미난 이야기로만 알았었는데 옛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실제로 원주에 이렇게 누워있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천하일색 앞에 사내라면 인연을 만들고 싶어 함이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다음은 원주시 부론면에 위치한 법천사지를 탐방했다. 법천사는 한때 남한 땅에 있는 최대 규모의 대가람이었으며 번성하던 시절에는 기거하던 인원이 수 천 명에 달해 쌀 씻은 뜨물이 남한강을 허옇게 물들이며 흘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법천사지를 둘러보고 <지광국사 현묘탑비(국보)>를 바라보니 그냥 무심히 스쳐 지나치던 탑이 스토리텔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며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경천묘를 보기위해 귀래면으로 버스는 달려야 했다. 그런데 귀래로 가는 길에 잠시 흥원창에 들렀다.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인 은섬포는 처가가 충주에 있던 다산 정약용이 처가에 다니러 오다가다 본 이곳의 경치가 기가 막혀 '은섬포'라는 이름을 지어 그 경치를 칭송했다고 한다.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횡성, 원주를 거쳐 흘러드는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인 은섬포에서 그 경치에 반해 눈을 떼지 못한 서슬 푸른 눈매를 지닌 도도한 선비가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빳빳하게 풀을 먹인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풍류를 즐겼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시야에 펼쳐진다.
미륵산 입구에서 차를 내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경천묘를 보았다. 어느 나라이건 망국은 비장하고 처절하다. 사직과 함께 죽지 못하고 살아남아 비통한 삶을 살다간 경순왕의 애달픈 생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탐방은 끝이 났다.
탐방 도중 들었던 원주에서 4명의 왕비를 배출했다는 설명은 놀라웠다. 한양과 가까웠으니 원주에도 인물이 많았겠지만 그래도 한양에 있는 권문세족의 딸과 경쟁하여 이긴 경위가 궁금하다. 도서관에 들러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내 한 번 찾아보리라 결심했다.
'길위의 인문학'에 참여할수록 역사적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애향심과 함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자주 하게 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 제목처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고 깨우친 모든 것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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