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도서관] 천전리 암각화와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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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숙 15-10-13 09:26 조회631회 2015.10.13본문
참가자 - 박영혜
암각화를 새긴 15도 가량 경사진 바위는 아마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지형적인 특징을 면밀이 따져 본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바위는 이암이며 새기기 비교적 쉬운 곳이다.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상부에 면 쪼으기로 나타낸 사슴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동물과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선 쪼기로 나타낸 다양한 기하무늬는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일종의 종교적인 상징으로 해석되고, 마름모꼴무늬, 굽은 무늬, 둥근 무늬, 우렁 무늬는 비...바람...태양....구름.... 등등, 청동기시대는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농경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각종 회로제도 모양입니다. 동심원과 마름모꼴의 세상운영회로, 인면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하부에 여러 명문과 가는 선긋기에 의한 인물 및 기마행렬, 배의 항해 모습, 동물상 등이 있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사슴, 물고기 새, 뱀, 사람얼굴상 등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당시의 풍요의식과 관련된 표현으로 해석된다.
천전리암각화 또는 서석이라고도 하는데....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명문들이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이용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씨가 새겨져 있어 서석이라 한다. 이 글씨를 새긴 이들이 이곳의 이름을 서석이라 칭했다.
이 글귀의 내용 중 을사(乙巳)기미(己未)등을 통해 6세기 초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을사년 6월18일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으로 신라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 법흥왕의 동생이자 진흥왕의 아버지인 사부지갈문왕이 부인과 함께 소풍와서 남겨 놓은 글씨가 된다. 함께 동행한 사람들... 음식을 해서 함께 먹은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사부지갈문왕은 법흥왕의 딸 지몰시 혜비와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
부인을 대단히 사랑했던 듯....
부인 지몰시 혜비가 죽은 후 이 곳을 다시 찾았다. 부인은 사부지 갈문왕보다 한참 어렸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연유로 죽었는지 모른다. 갈문왕은 그의 어린 아들(진흥왕)을 데리고 그 옛날을 회상했다 한다.
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와 고대사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유적인 것 같다.
300여자의 명문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신라 사람들이 삼국시대 이래 이곳을 성지로 여겼음을 짐작하게 한다.
일부 파손된 부분은 가슴 아프지만 천전리의 폭발적인 기운은 생각만 해도 감동이다.
천전리 각석은 대곡천변의 풍광과 어우러진 풍경이 절경이었다.
천전리 서석 건너편에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이 주변의 암석들은 모두 이암들인데... 먼 옛날 이곳이 호수였거나 바닷가였다는 증거다. 진흙이 굳어서 된 암석이다. 먼 옛날 공룡들이 이곳에서 노닐다가 갑작스런 지각변동으로 인해 그 발자국이 화석으로 남겨진 것이다.
우리는 공룡의 발자국을 살짝 피해 간단이 싸온 도시락으로 공룡이 노니던 이 대 자연 속에서 감히 여럿이 모여 맛있게 먹고 담소를 나누며 반구대암각화로 발길을 돌렸다.
반구대암각화는 천전리 암각화에서 멀지 않다. 같은 계곡에 있다. 천전리는 상류, 반구대는 하류에 해당한다. 천전리에서 반구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걷기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곳 가는 길에 습지도 보이고 이만한 규모의 습지도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없습니다. 편안한 산책길이었다.
새로난 천전리에서 반구대로 가는 길에 유난히 氣가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라 한 장면 찰칵.
새로 계곡이 형성되어 가는 곳이라 새로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나 보다.
반구대를 찾아 걸어가는 길에 참으로 호젓하고 수려한 길이다.
대곡천. 병풍 같은 절벽을 휘감고 굽이굽이 내가 흐른다.
오후 햇살에 개천물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예사롭지 않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
반구대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감탄으로 얼굴빛이 밝아지며 탄성을 지른다
고래 암각화로 유명한 반구대 절벽이다. 세월의 웅대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아 비장미가 느껴진다
예로 부터 시인 묵객들의 이목을 끌었음직한 반구대의 기암절벽이다
반구대는 정몽주선생이 귀양살이 하며 그 경치에 반해 정자를 짓고 제자들과 학문을 쌓은 인연이 있으며....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등도 풍광이 수려한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계곡으로 뻗어내린 지형의 모습이 거북을 닮아 반구대라 했다.
반구대 암각화 앞을 흐르는 대곡천은 사연호라는 댐을 거쳐 태화강으로 흘러간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처마가 드리운듯한 경사진 평평한 부분에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선사시대의 그림, 우리나라 최초의 회화가 각인되어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초기철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암각화는 너비 10m, 높이 3m 크기의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암각화는 표현대상의 내부를 모두 쪼아낸 면쪼기 기법과, 윤곽만을 쪼아낸 선쪼기 기법으로 새겨졌다.
바위 면에 새겨진 것은 크게 바다짐승과 뭍짐승, 사람, 도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바다짐승으로는 고래, 물개, 바다거북 등이 발견되며, 뭍짐승으로는 사슴, 호랑이, 멧돼지, 개 등이 다수 보인다. 사람은 얼굴만 그려진 경우와 바로 선 모습, 옆으로 선 모습, 배에 탄 모습이 있는데, 옆으로 선 모습의 경우 성기를 강조한 점이 특징적이다.
도구로는 배, 울타리, 그물, 작살 등을 볼 수 있다.
암각화는 바다와 육지동물, 사냥과 포경 장면 등 동물의 생태적 특징과 당시의 생활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다 동물은 고래, 거북, 물고기, 가마우지 등이 있으며, 육지동물은 사슴, 멧돼지, 호랑이, 표범, 여우, 늑대, 너구리 등이 새겨져 있다.
암각화에 표현된 배와 작살, 부구를 이용하여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은 과거 고래를 잡고 이를 숭배한 뛰어난 해양어로 문화가 울산만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고래 고기의 부위별 해체장면을 기록해 놓은 걸 보니 이 시대와 똑같음에 감탄하였다.
망원경을 통해 찾아보니 마치 기억과 역사 속으로 빠져들어 고대인의 사유세계를 드려다 보는 야릇한 전율을 느꼈다
김종희 강사님의 시적인 격조 높은 언어로 열심히 설명하신다.
설명을 들으며 꿰맞춰보니 수많은 고래가 숨어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같다. 작은 고래, 큰고래, 거북이, 그물, 사람그림 .....
고래가 먹이를 따라 이곳 태화강의 상류인 대곡천까지 올라오고, 선사시대의 어부들이 함성을 지르며 작살을 내려쳐 고래를 잡았을 것이라고...
반복된 여러 마리의 고래는 자신들이 마치 돌을 쌓듯이 기원을 올리는 의미와 같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나니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염원은 변하지 않구나’ 라는 생각에 이 문화체험의 주제인 ‘기억과 역사의 경계에서 생각의 길을 걷다,’가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물에 잠겨 유적이 소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은 임시적으로 댐을 이용하지만 영원히 간직할 수 있기를...
이번 기회에 다시 찾아와 보게 된 암각화!
우리나라 최초의 회화로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는 볼수록 조상들의 위대함이 벅차게 다가옴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한 훌륭한 답사였다.
이런 기회가 매년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김종희 강사님을 뵙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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