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립서강도서관] 미술관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 4차 후기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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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15-10-07 16:50 조회658회 2015.10.07본문
편견을 깨버린 <앤디 워홀 전>을 다녀와서
윤 혜 숙
솔직히 말하자면 난 앤디 워홀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술가 특히 화가라면 고흐처럼 불우하거나, 밀레처럼 고집이 있거나, 피카소처럼 스캔들 메이커든가 그래야지, 너무 돈 많고, 텔레비전이나 매체에서 연예인처럼 자주 얼굴을 보이고, 이상한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그런 사람을 보러 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전 시간에 인상파(마네와 모네) 강의를 들은데다, ‘현대대중미술의 거장’ ‘팝아트의 선구자이자 대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사람이니 한번 봐두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순전히 ‘나도 앤디 워홀 전 봤거든!’ 그런 자랑거리를 만들려는 허영심의 발로일지도.
(개인적으로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마포구의 도서관 프로그램은 가히 대학원 수준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수준 높다. 내 일상을 잘 아는 사람들은 마포구에 살지 못하는 걸 최고의 한이라고 불퉁거린다.)
처음의 께끄름한 마음과는 달리 도슨트를 따라 대충 전시장 반 바퀴를 돌고 나서는 두 시간의 관람 시간이 부족하다 싶을 만큼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도슨트의 이야기도 귀에 쏙쏙 들어오고, 교과서와 여러 책에서 봤던 작품들을 실물로 마주보는 감동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어갔다.
인간의 간사함이란 이다지도 가증스러운 건가 싶다. 두 시간 전의 껄끄러운 마음이 미안할 정도였다.
캠벨 통조림 시리즈와 마릴린 몬로 그림은 진짜 놀라웠다. 그 시절에 사진 판권을 샀다는 것도, 복제 가능한 사진을 최고가의 예술작품으로 전복시킨 것도.
사진의 발명으로 회화는 사실의 재현에서 벗어나 추상의 길로 들어섰고, 미술가들이 난해하고 복잡한 추상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릴 때 워홀은 원본인 사진의 복제품으로 원작을 재현하고 원작의 절대성과 고유성을 뛰어넘었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사진이 예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가 중요하다.”이은주 샘의 강좌에서 들은 벤야민의 말이 앤디 워홀의 예술 세계를 한 마디로 단번에 정리해 주었다.
이런 걸 일상을 예술로 승화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앤디 워홀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의 숭고함보다는 근대초기까지만 해도 일부 권력자의 소장품으로, 감상품으로 존재하는 미술의 향유자를 일반 대중으로 옮아가게 만들었다.
관람 내내 내 뒷목을 뻣뻣하게 만든 건 워홀의 어머니였다.
위대한 사람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 워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병약해서 학교에 갈 수 없는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예술가의 자질을 키워준 것도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자식의 미래를 만든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실인 것 같다.
화려한 명성과 부 뒤에 그가 죽을 때까지 겪어야 했던 고통은 듣는 것만으로 마음 아팠다. 팩토리를 들락거리며 그를 추앙하던 한 여배우의 총격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고 그후로도 평생 가죽 패치코트를 차고 살아야 했다니.
바스키아와의 짧지만 지독했던 예술적 동행도 남다른 감흥이었다. 누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운명이다. 워홀에게는 모르겠지만, 바스키아에게는 워홀이 운명적 사람이었던 건 분명한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많은 잡지들의 표지화를 그렸고, 또 많은 동화책의 글과 그림을 그렸고, 동성애자(그 시대에 그가 예술가적 명성과 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세상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했을 거다)였지만 거의 모든 사교 모임에서 군림했고, 모든 매체의 관심과 환호를 받았다. 돈과 명예를 쫓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열심히 걸었을 뿐인데 결국엔 돈도, 명예도 거머쥐었던 앤디 워홀의 삶은, 우리 아버지의 오랜 가르침 ‘돈을 쫓지 말고, 돈이 쫓아오기게 해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이번 ‘길 위의 인문학’에서 나는 많이 깨지고 부서졌다. 편견에서 벗어났고, 새로운 생각 하나를 갖게 되었다. 편견은 깨지고 부서져야 비로소 진실, 적어도 사실 근처에라도 다가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동원참치 캔도 예사롭지 않아 보일 것 같고, 할인마트 구석에 쌓여 있는 상자들도 다시 들춰보게 될 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마릴린 몬로가 나오는 <나이아가라> 영화를 다시 보려고 웹사이트를 뒤지고 다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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