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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도서관] 어둠 속의 대화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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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도서관 15-09-16 18:01 조회611회 20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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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도서관] 어둠 속의 대화를 다녀와서.

이현경

 

 

지인의 소개로 참여하게 된 어둠 속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된 북촌, 그 곳에 처음 가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저 눈가리개나 연출된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오감을 동원해 어둠을 체험하겠거니 했다. 또한 동행하게 된 네 분의 시각장애인이 이 프로그램과 과연 연관성이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 분들의 삶 속에 자리한 어둠은 어쩌면 우리가 아는 빛처럼 자연스럽고 공기처럼 흔한 그것과 같다고 생각되었기에 이 프로그램이 과연 그들에게 울려지는 무엇이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내가 접한 어둠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두려움을 넘어 생각까지 움츠러들게 하는 공포였다. 눈을 뜨나 감으나 같은 세상. 오로지 촉각과 청각, 시각을 제외한 감각에만 의지해야 하는 세상이었다. 로드마스터님의 안내 없이는 난간을 잡을 수도, 한걸음 떼는 것도 두려워 가슴이 졸여지고 식은땀이 솟았다. 그동안 내가 어둠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두 명씩 짝을 이뤄 모두 여덟 명의 체험자는 차분한 로드마스터님의 진행으로 어둠 속에서 점차 안정을 찾았다. 공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았고, 표를 끊어 모터의 진동이 강하게 느껴지는 배도 탔다. 시장에서 물건도 사보고, 카페에 가서 음료를 마시기도 했다. 비시각장애인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던 일상을 잠시 장애인이 되어 살아보았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공원 벤치에 앉는 것도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는 어느 것 하나도 온통 두려움뿐이었다. 지인의 팔에 의지하고, 로드마스터님의 손길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 분의 재미있는 진행과 함께 한 분들과의 즐거운 호흡 덕분에 백 분의 시간이 삼사십 분으로 느껴질 만큼 시간의 흐름이 무색했다. 

 

로드마스터님이 실제로 시각장애인이셨다는 걸 알았을 때 느꼈던 감동이란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시각이 불편할 뿐 그녀는 예쁜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고 훌륭한 전문가였다. 오로지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에만 의존하여 마지막 출구를 나가기까지 같은 입장이지만 마치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는 불안한 어린 아이처럼 로드마스터님을 의지해야 했다.  

 

현실 속의 시각장애인들이 느낄 두려움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일들이 실제처럼 접하게 되었을 때 솔직히 좀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나의 눈에게. 나의 감각들에게. 나의 모든 것에게.

이렇게 귀한 경험은 삶 속에 흔치 않은 일이다.  

 

어둠 속의 대화를 초대해준 해밀 도서관의 류 혜정 사서에게 감사하다 말하고 싶고, 프로그램의 진행자 김 혜성 로드마스터님의 아름답고 지적인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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