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일궈온 땀의 흔적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순창군립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탐방 하루 전에 작가에 관한 강연을 듣기에, 작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서슴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그 첫 번째로 소설 ‘혼불’의 작가 고 최명희 님을 만나는 시간.
탐방가기 전에 ‘혼불’을 단 한권이라도 읽고 가야겠다는 마음은 어느 새 욕심이 되어 버렸다. 왜 이렇게 책이 안 읽히는지, 눈길은 낯익은 사투리에 꽂혀서 헤매었다. 다행히도 최기우 강사(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의 강연을 듣고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안심을 했다. 강사님은 소설 ‘혼불’ 10권을 다 안 읽어도 좋으니, 한 권이라도 그냥 넘기면서 보라고 했다. 그러다 마음에 꽂히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있으면 그것을 마음에 새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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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출간하고 나서 이게 무슨 소설이냐며 항의도 많았었다던데, 그렇다면 작가는 왜 기존의 소설 형식을 벗어난 ‘혼불’을 탄생시켰는지 궁금했다. 또한, “단 한 사람만이라도 제가 하는 일을 지켜본다면 이 길을 끝내 가리라고 다짐했습니다”라는 육성에 전율을 느꼈다.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던 고 최명희 작가님. 그 간절함이, 그 사무침이 오늘의 ‘혼불’을 탄생시켰으리라. 얼른 ‘혼불’의 혼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일었다.
8월 22일 토요일 아침, 40여명의 우리 일행은 전주 건지산 자락에 위치한 혼불문학공원을 방문하여 고 최명희 작가의 묘역에서 엄숙한 묵념을 올렸다. 순창 출신 풍수지리가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이 묘역은, 작가의 모교인 전북대학교 소유라는 점과 미혼이라 가족이 없어 외로울까봐 사람이 오가는 길가에 마련했다고 하니 의미심장하다. 처음엔 달랑 무덤 하나였지만, 전주시와 유족들의 뜻을 받들어 이젠 화려한 무덤이 되었단다. 묘 바로 앞에 작가의 부조상이 있는 점이 특이했다. 묘 아래에는 반원형으로 열 개의 안내석이 있는데, ‘혼불’에서 발췌한 구절과 고 최명희 작가의 어록이 새겨져 있어 왠지 든든함이 느껴졌다.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생가터를 찾았다. 생가터는 지금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 되어버렸다. 땅 값이 올라 생가를 복원할 수 없었다는 귀띔에 안타까웠지만, 생가터를 지나는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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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길’이라 명명하여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고 최명희 작가를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최명희 작가는 항상 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고 한다. 가세가 기울어 맏이로서 동생들을 챙겨야 했던 그 시절의 고단함이 느껴져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생가 터에서 나와,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최명희 문학관’으로 향했다. 한 번 도는 데 6초밖에 안 걸린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문학관이다. 기둥에도 전시품을 붙여 전시관 밖 곳곳에서도 구경할 수가 있었다. 전시관 안은 마치 앨범 같았다. 중, 고등학교 시절 사진이며, 편지, 만년필, 친필 원고지 등등.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건 고 최명희 작가의 육성이 담긴 영상물이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입니다. 저는 ‘혼불’에다가 진정한 불빛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얼이, 넋이 무늬로 피어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1990년대 최고의 책 1위로 뽑힌 ‘혼불’, 국어사전에도 없던 ‘혼불’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혼불’의 마력에 사로잡힌 나는 차마 문학관을 나올 수 없었다. 몇 번이고 육성을 들은 후에야 문학관을 뒤로 한 채 한옥마을을 둘러봤다. 다채로운 볼거리와 먹거리에 놀랐고, 전주가 안겨주는 멋스러움에 빠져들었다.
오후 두 시가 넘어 작품 속에 나오는 ‘서도역’에 들렀다. 다른 곳처럼 레일바이크를 운영하여 관광상품화할 수도 있지만,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 레일바이크를 사놓고도 가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지막 여정은 남원 혼불문학관. 널따란 잔디밭이 시원스럽다. 이곳엔 혼례 첫 장면, 흡월정하는 모습, 상여 나가는 모습, 액막이 연 날리는 모습, 쇠여울네 종가 마루 찍는 모습 등 작품속 내용을 모형으로 직접 꾸며놓아 실재감을 주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하에서, 우리 조상들이 겪었을 한(恨)을, 천민들이 겪었던 아픔을 작품 속에 토로하며, 자신의 병환과 대체한 고 최명희 작가님.
“어둠이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작가의 말 속에 고 최명희 작가의 모든 것이, ‘혼불’의 혼(魂)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흡월정(吸月精)> : 달의 정기를 받고자 달밤에 달을 보고 입으로 그 기운을 흡입하는 것.
(순창지역신문 열린 순창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