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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한국 근대의 첫 길목: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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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도서관18-07-18 11:14 조회103회 201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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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장과 근대화의 본고장 인천 
1883년 인천 개항은 열강들이 강압적인 포함외교를 벌인 결과인 동시에 우리의 독자적인 개화의 의지를 앗아간 좌절의 역사였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은둔의 왕국 조선이 비로소 서구 근대자본주의의 변방에 들게 된 중대한 사건이기도 했다. 인천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개화의 창구이자 신문물의 유입지로서 우리나라 근대화의 첨병 역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팔미도 등대가 사상 처음으로 바닷길을 밝히기 시작했고, 경인선 철도가 고고의 기적소리를 울리며 신문물을 서울로 실어 날랐다.
□ 전쟁의 그늘진 이미지였던 인천
 제물포가 세계에 비로소 알려진 것은 전쟁(戰爭) 때문이었다. 평시에 열강은 인천의 영사관과 제물포구락부 등을 무대로 외교전을 펼쳤지만 이권이 상충하자 남의 나라 앞마당에서 방자하게 전쟁을 일으켜 포탄을 퍼부었던 것이다. 개항 전야의 신미양요, 병인양요, 운양호사건과 개항 이후의 청일전쟁과 제물포해전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와 함께 아시아 최대의 독(Dock)을 설치해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제2의 항구이자 수도권의 관문항으로서 그리고 대중국 무역항으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 인천항은 국제공항, 신도시와 더불어 인천 발전의 견인 트로이 카로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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