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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오르는 한라산/ 홍신선 글] 나는 시 (백록담)을 읽으며 마음속으로나마 종종 한라산 등정을 한다.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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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오르는 한라산/ 홍신선 글] 나는 시 (백록담)을 읽으며 마음속으로나마 종종 한라산 등정을 한다.

[마음속으로 오르는 한라산]

 

최근에도 나는 시 (백록담)을 읽으며 마음속으로나마

종종 한라산 등정을 한다.

그것도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모든 것을

떨쳐 보고 싶어 홀로 오르고는 하는 것이다.

 

문학사상사(2001.7.25.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④

[정지용, <백록담>홍신선 마음속으로 오르는 한라산’ 253쪽에서]

 

 

 

 

 

백록담

 

                              정지용

 

1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소모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굴만 갸옷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8월 한철엔 흩어진 성진(星辰)처럼 난만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2

암고란(巖古蘭) 환약같이 생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 6천척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녀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여진다.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힌 송아지는 움매- 움매-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여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風蘭)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회파람새 회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굴으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측넌출 긔여간 흰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조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삭갓나물 대풀 석이(石耳)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을 색이며 취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여 산맥 우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여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긔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눌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좇겨온 실구름 일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골에 한나잘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