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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길에서 정화의 길로/ 허영자 글] 반쪽의 낮달처럼 창백하고 미완성인 젊은이의 가이없는 슬픔을 위무(慰撫)하고...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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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길에서 정화의 길로/ 허영자 글] 반쪽의 낮달처럼 창백하고 미완성인 젊은이의 가이없는 슬픔을 위무(慰撫)하고...

[방황의 길에서 정화의 길로]

 

(바다)는 방황하고 있던 필자에게 정화의 길을 열어 준

작품이었다. 반쪽의 낮달처럼 창백하고 미완성인

젊은이의 가이없는 슬픔을 위무(慰撫)하고

어디다 풀 수 없었던 분노를 삭히게 해주었던 것이다.

 

문학사상사(2001.7.25.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④

[서정주, <바다>허영자 방황의 길에서 정화의 길로’ 247쪽에서]

 

 

 

 

 

바다

                                  서정주

 

귀기우려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우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반딧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우름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속에 숨기어가지고……너는.

무언의 해심(海心)에 홀로 타오르는

한낫 꽃같은 심장으로 침몰하라.

 

스스로히 푸르른 정열에 넘처

둥그란 하눌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 깊이우에

네구멍 뚤린 피리를 불고…… 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모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게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갈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어지러운 심장의 무게우에 풀닢처럼 흣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 뜨라……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

 

아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