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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인연/ 김종길 글] 한 작품이 한 비평가에 의해 세 번이나 글 가운데서 다루어지고 ... 나와 이 작품과의 관계는 특별하다고 할 만도 하다.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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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인연/ 김종길 글] 한 작품이 한 비평가에 의해 세 번이나 글 가운데서 다루어지고 ... 나와 이 작품과의 관계는 특별하다고 할 만도 하다.

[아주 특별한 인연]

 

한 작품이 한 비평가에 의해 세 번이나 글 가운데서

다루어지고 그것에 대한 평가가 그 시인의 시에 대한

긍정적 평가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면 그 작품과

그 비평가와의 관계는 설사 그것이 공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보통의 관계는 아니다. 그러니

나와 이 작품과의 관계는 특별하다고 할 만도 하다.

 

문학사상사(2001.7.25.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④

[박성룡, <처서기(處暑記)>김종길 아주 특별한 인연’ 77쪽에서]

 

 

 

 

<처서기(處暑記)>

                             박성룡

 

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천지를 울리던 우뢰소리들도 이젠

마치 우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걷히듯

먼 산맥의 등성이를 넘어가나보다.

 

역시 나는 자정을 넘어

이 새벽의 나른한 시간까지는

고단한 꿈길을 참고 견뎌야만

처음으로 가을이 이 땅을 찾아오는

벌레 설레이는 소리라도 듣게 되나보다.

 

어떤 것은 명주실같이 빛나는 시름을,

어떤 것은 재까재깍 녹슨 가윗소리로,

어떤 것은 또 엷은 거밀줄에라도 걸려

파닥거리는 시늉으로

들리게 마련이지만,

그것들은 벌써 어떤 곳에서는 깊은 우물을 이루기도 하고

손이 시릴 만큼 차가운 개울물 소리를

이루기도 했다.

 

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나는 아직은 깨어 있다가

저 우뢰소리가 산맥을 넘고, 설레이는 벌레소리가

강으로라도, 바다로라도, 다 흐르고 말면

그 맑은 아침에 비로소 잠이 들겠다.

 

세상이 유리잔같이 맑은

그 가을의 유리잔같이 맑은

그 가을의 아침에 비로소

나는 잠이 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