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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바치는 진혼가/ 김광규 글] 이 시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대결과 갈등을 경고하는 영혼의 진혼가(鎭魂歌)라고 할 수 있다.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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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바치는 진혼가/ 김광규 글] 이 시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대결과 갈등을 경고하는 영혼의 진혼가(鎭魂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바치는 진혼가]

 

이 시는 독일인과 유태인 사이에 일어난 비극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 잠재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대결과 갈등을 경고하는

영혼의 진혼가(鎭魂歌)라고 할 수 있다.

 

문학사상사(2001.7.25.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④

[파울 첼란, <죽음의 둔주곡>김광규 인간에게 바치는 진혼가’ 41쪽에서]

 

 

 

 

<죽음의 둔주곡>

                                       파울 첼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그것을 저녁마다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한낮에도 그리고 아침에도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밤마다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한 사나이가 집에서 산다 그는 뱀들과 함께 논다 그는 편지를 쓴다

그는 어두워지면 독일로 편지를 쓴다 그대 금빛 머리의 마르가레테여

그는 편지를 쓰고 집 앞으로 나온다 별들이 반짝인다 그는 휘파람으로 자기의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는 휘파람으로 자신의 유태인들을 불러내어 땅에 무덤을 파게 한다

그는 우리에게 무도곡을 연주하라고 명령한다

 

새벽의 검은 우유여 우리는 너를 밤마다 마신다

우리는 너를 아침에도 그리고 한낮에도 마신다 우리는 너를 저녁마다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사나이가 집에서 산다 그는 뱀들과 함께 논다 그는 편지를 쓴다

그는 어두워지면 독일로 편지를 쓴다 그대 금빛 머리의 마르가레테여

그대 잿빛 머리의 줄라미트여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그는 외친다 한 무리는 땅 속으로 더욱 깊이 삽질을 하고 너희들 또 한 무리는 노래 부르고 연주하라

그는 허리에 찬 권총을 잡고 그것을 흔든다 그의 눈은 파랗다

너희들 한 무리는 더욱 깊이 삽질을 하고 너희들 또 한 무리는 계속해서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이 검은 우유여 우리는 너를 밤마다 마신다

우리는 너를 한낮에도 그리고 아침에도 마신다 우리는 너를 저녁마다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한 사나이가 집에서 산다 그대 금빛 머리의 마르가레테여

그대 잿빛 머리의 줄라미트여 그는 뱀들과 함께 논다

 

그는 외친다 더욱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이 낳은 대가이다

그는 외친다 더욱 음울하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라 그러면 너희들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러면 너희들은 구름 속에 무덤을 갖게 된다 거기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새벽의 검은 우유여 우리는 너를 밤마다 마신다

우리는 너를 한낮에도 마신다 죽음은 독일이 낳은 대가이다

우리는 너를 저녁에도 그리고 아침에도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이 낳은 대가이다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납으로 만든 총알로 너를 맞춘다 그는 너를 정확히 명중시킨다

한 사나이가 집에서 산다 그대 금빛 머리의 마르가레테여

그는 자기의 사냥개로 우리를 쫓도록 한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을 선사한다

그는 뱀들과 함께 놀며 꿈 꾼다 죽음은 독일이 낳은 대가이다

 

그대 금빛 머리의 마르가레테여

그대 잿빛 머리의 줄라미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