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공지
[별과 바람이 있던 밤하늘 아래서/ 조세현 글] 그날 밤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2017.04.05
604

본문

[별과 바람이 있던 밤하늘 아래서/ 조세현 글] 그날 밤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별과 바람이 있던 밤하늘 아래서]

 

함께 있던 친구들의 이름도 아련하고

지명조차 더듬어지지 않는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날 밤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문학사상사(1999.10.15.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③

[윤동주, <별 헤는 밤>조세현 별과 바람이 있던 밤하늘 아래서’ 207쪽에서]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來日)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추억(追憶)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동경(憧憬)

별하나에 시()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小學校)때 책상(冊床)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 () 이런 이국(異國) 소녀(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쓰'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시인(詩人)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