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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바람이 있던 밤하늘 아래서]
함께 있던 친구들의 이름도 아련하고
지명조차 더듬어지지 않는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날 밤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문학사상사(1999.10.15.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③
[윤동주, <별 헤는 밤>|조세현 ‘별과 바람이 있던 밤하늘 아래서’ 207쪽에서]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來日)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靑春)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추억(追憶)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동경(憧憬)과
별하나에 시(詩)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小學校)때 책상(冊床)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쓰․짬'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시인(詩人)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