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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야, 로이야]
나는 아직도 글은 절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가끔 글이 성가실 때, 글로 밥 먹는 게
배부를 때 김명인의 시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문학사상사(1999.10.15.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③
[김명인, <베트남 1> |노희경 ‘로이야, 로이야’ 165쪽에서]
베트남 1
김명인
먼지를 일으키며 차가 떠났다, 로이
너는 달려오다 엎어지고
두고두고 포성에 뒤집히던 산천도 끝없이
따라오며 먼지 속에 파묻혔다 오오래
떨칠 후 없는 나라의 여자, 로이
너는 거기까지 따라와 벌거벗던 내 누이
로이, 월남군 포병 대위의 제3부인
남편은 출정중이고 전쟁은
죽은 전남편이 선생이던 국민학교에까지 밀어닥쳐
그 마당에 천막을 치고 레이션 박스
속에서도 가랑이 벌려 놓으면
주신 몸은 팔고 팔아도 하나님 차지는 남는다고 웃던
로이, 너는 잘 먹지도 입지도 못하였지만
깡마른 네 몸뚱아리 어디에 꿈꾸는 살을 숨겨
찢어진 천막 틈새로 꺽인 깃대 끝으로
다친 손가락 가만히 들어올려 올라가 걸리는 푸른 하늘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행복한가고
네가 물어서
생각하면 나도 행복했을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았다
잊어야 할 것들 정작 잊히지 않는 땅 끝으로 끌려가며
나는 예사로운 일에조차 앞날 흐려 어두운데
뻒뻑한 눈 비비고 또 볼수록, 로이
적실 것 더 없는 세상 너는 부질없어도 비 되어 내리는지
우리가 함께 맨살인데 몸 섞지 않고서야 그 무슨
우연으로 널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
로이, 만난대서 널 껴안을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