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공지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최태지 글] 나는 새로운 눈으로 그의 시를 보게 되었다. 그가 아내와 나눈 사랑 때문이다.
2017.02.22
709

본문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최태지 글] 나는 새로운 눈으로 그의 시를 보게 되었다. 그가 아내와 나눈 사랑 때문이다.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 인생이 무엇인지,

남편이 무엇인지, 자식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

나는 새로운 눈으로 그의 시를 보게 되었다.

그가 아내와 나눈 사랑 때문이다.

 

문학사상사(1999.5.20.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②

[다카무라 코다로<道程(도정)>/ 최태지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199쪽에서]

 

 

 

 

道程(도정)

              다카무라 코타로(高村光太朗)

 

내 앞에 길은 없다

내 뒤에 길은 생긴다

 

아아, 자연이여

아버지여

 

나를 홀로 서 있게 한 광대한 아버지여

나에게서 눈을 떼지 마시고 지키시라

언제나 아비의 기백을 내게 채우시라

 

이 머나먼 도정을 위해

이 머나먼 도정을 위해.

 

 

* <레몬 哀歌>

 

그렇게 당신은 레몬을 쥐고 있었어

쓸쓸하고도 하얗고 밝은 병상에서

내 손에서 넘겨 받은 레몬 한 조각을

당신의 단정한 이로 꼭 깨물어

토파즈 색으로 향기가 일고

 

그 몇 방울 안 되는 레몬 즙에

당신은 의식을 되찾았지

 

당신의 맑고 파아란 눈이 희미하게 웃고

내 손을 쥔 당신의 손에 힘이 넘쳤어

 

당신의 목에서는 거친 바람이 불었어도

그처럼 위태한 생의 한가운데에서

 

치에코는 원래의 치에코가 되어

일생의 사랑을 한 순간에 부어 넣었지

그리고, 한 동안

그 옛날 산정(山頂)에서처럼 심호흡 한번 하고

당신의 기관(機關)은 그대로 멈추었어

 

사진 앞에 꽂은 벚꽃 그늘에

차갑게 반짝이는 레몬을 한 개 놓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