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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음의 라르고가 실린 ‘전라도 가시내’의 아픔/ 김영덕 글] 나는 외톨이로 민족적 정서와 민족적 현실을 어떻게 그림에 담아내는냐에 골몰하고 있었으니~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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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음의 라르고가 실린 ‘전라도 가시내’의 아픔/ 김영덕 글] 나는 외톨이로 민족적 정서와 민족적 현실을 어떻게 그림에 담아내는냐에 골몰하고 있었으니~

[중음의 라르고가 실린 전라도 가시내의 아픔]

 

나는 외톨이로 민족적 정서와

민족적 현실을 어떻게 그림에 담아내는냐에

골몰하고 있었으니,

이 시가 나에게 혈연적 공감으로

압도해 온 것은 당연했으리라.

 

문학사상사(1999.5.20.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②

[이용악<전라도 가시내>/ 김영덕 중음의 라르고에 실린 전라도 가시내의 아픔’/ 187쪽에서]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 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네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젠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궈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리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께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