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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표범의 자존심/ 김행 글] 하이에나가 아닌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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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표범의 자존심/ 김행 글] 하이에나가 아닌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킬리만자로 표범의 자존심]

 

나는 항상 자존심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고,

치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이에나가 아닌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문학사상사(1999.5.20.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②

[양인자<킬리만자로의 표범>/ 김행 킬리만자로 표범의 자존심’/ 107쪽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

 

                            양인자 시, 김희갑 곡

 

먹이를 찾아 산 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 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은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간다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한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꺽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네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