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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끝나도 함께하고픈 사람/ 유정아 글] 삶이란 지난한 고독으로 그 긴 인생을... 고독하게 홀로 펄럭이고 싶다니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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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끝나도 함께하고픈 사람/ 유정아 글] 삶이란 지난한 고독으로 그 긴 인생을... 고독하게 홀로 펄럭이고 싶다니

[생이 끝나도 함께하고픈 사람]

 

삶이란 지난한 고독으로 그 긴 인생을

순간순간 내공의 힘으로 견뎌 왔을 것인데,

죽음 이후에도 그것을 거두지 않고

속세에서 그리 오래도록

고독하게 홀로 펄럭이고 싶다니.

 

문학사상사(1999.5.20.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②

[황동규<풍장(風葬)>/ 유정아 생이 끝나도 함께하고픈 사람’/ 99쪽에서]

 

 

 

 

風葬(풍장)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족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설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白金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化粧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