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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은밀한 곳의 ‘골방’/ 황필호 글] 나에게는 골방이 없다
201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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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은밀한 곳의 ‘골방’/ 황필호 글] 나에게는 골방이 없다

[마음속 은밀한 곳의 골방’]

 

나에게는 골방이 없다.

언제나 티끌이 뒤끓는 네거리를 쏘다녔고,

거드름을 피는 손을 위해

휘황찬란한 응접실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의 얼굴이

어찌 도깨비가 되지 않겠는가.

 

문학사상사(1999.5.20.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②

[함석헌<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황필호 마음속 은밀한 곳의 골방‘/ 91쪽에서]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함석헌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대는 님 맞으려 어디 갔던가?

네거리에던가?

님은 티끌을 싫어해

네거리로는 아니 오시네.

 

그때는 님 어디다 영업하려나?

화려한 응접실엔가?

님은 손 노릇을 좋아 않아

응접실에는 아니 오시네.

님은 부끄럼이 많으신 님,

남이 보는 줄 아시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여

말씀을 아니 하신다네.

 

님은 시앗이 강하신 님,

다른 친구 또 있는 줄 아시면

애를 태우고 눈물 흘려 노여워 도망을 하신다네.

 

님은 은밀한 곳에만 오시는 지극한 님,

사람 안 보는 그윽한 곳에서

귀에다 입을 대고 있는 말을 다 하시며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자 하신다네.

 

그대는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

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

껌껌한 지붕 밑엔가?

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 맘의 네 문 밀밀이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 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면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