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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은밀한 곳의 ‘골방’]
나에게는 골방이 없다.
언제나 티끌이 뒤끓는 네거리를 쏘다녔고,
거드름을 피는 손을 위해
휘황찬란한 응접실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의 얼굴이
어찌 도깨비가 되지 않겠는가.
문학사상사(1999.5.20.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②
[함석헌|<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황필호 ‘마음속 은밀한 곳의 ’골방‘/ 91쪽에서]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함석헌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대는 님 맞으려 어디 갔던가?
네거리에던가?
님은 티끌을 싫어해
네거리로는 아니 오시네.
그때는 님 어디다 영업하려나?
화려한 응접실엔가?
님은 손 노릇을 좋아 않아
응접실에는 아니 오시네.
님은 부끄럼이 많으신 님,
남이 보는 줄 아시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여
말씀을 아니 하신다네.
님은 시앗이 강하신 님,
다른 친구 또 있는 줄 아시면
애를 태우고 눈물 흘려 노여워 도망을 하신다네.
님은 은밀한 곳에만 오시는 지극한 님,
사람 안 보는 그윽한 곳에서
귀에다 입을 대고 있는 말을 다 하시며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자 하신다네.
그대는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
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
껌껌한 지붕 밑엔가?
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 맘의 네 문 밀밀이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 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면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