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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가난한 시인의 아들/ 박동규 글] 이 (가정)이라는 시는 나에게 아버지의 살아 있는 얼굴을 보게 하는 다리가 된다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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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가정’과 가난한 시인의 아들/ 박동규 글] 이 (가정)이라는 시는 나에게 아버지의 살아 있는 얼굴을 보게 하는 다리가 된다

 

[‘가정과 가난한 시인의 아들]

 

시라는 형식을 빌려 조금이나마 시인이기에

어설픈 아버지였다는 고백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가정)이라는 시는 나에게 아버지의

살아 있는 얼굴을 보게 하는 다리가 된다.

 

문학사상사(1999.5.20.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②

[박목월가정/ 박동규 가정과 가난한 시인의 아들’/ 19쪽에서] 

 

 

가정

          박목월

    

지상(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玄關)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詩人)의 가정(家庭)에는

앞 전등(電燈)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微笑)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地上).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屈辱)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地上)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存在)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 : 신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1문은 약 2.4cm)